외상으로 소를 잡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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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외상으로 소를 잡채.

by 바람 그리기 2021.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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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부터 먹고 싶었던 잡채.
 비닐봉지를 하나 챙겨 넣고 동네 편의점에 들러 재료를 사 왔다.
 당면, 양파, 당근, 느타리버섯(지질한 것), 시금치, 후추, 아지노모토, 볶은 통깨, 돼지 엉덩이 살(반 근).

 식용유 떨어트린 온수에 당면 먼저 담가 놓고, 야채 손질해서 썰고, 도야지 반 근 중 반만 잘라 채로 썰고.
 적당한 크기의 팬이 없으니(광에 들어가 덜그럭거리기 귀찮고), 어머님이 1세대 전기밥솥에서 쓰셨던 내솥에다 조리를 시작하는데, 양은 많고 불이 약하니 물이 생긴다. 한 끼는 잡채밥으로 먹을 생각이니 나쁜 상황은 아니었지만...

 거의 다 마칠 무렵, 배가 고파 손이 덜덜 떨린다.
 정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서둘러 밥을 푸고 잡채를 얹고 국물을 쪽 짜서 보태고.
 첫술을 뜨는 순간 울리는 전화벨.

 

 "밥 먹었니? 뭐시기랑 해물찜 먹으러 가는데…."라는 친구 뭐시기의 전화.
 하... 5분만 빨리 전화했더라면, 해물찜에 쐬주 한잔할 수 있었을 텐데. 비도 오고...

 그제 무 하나 사다가 물김치 담가 시원하게 잘 익혀 넣어두었고,
 오늘은 제사 모시고 넣어 둔 포 하나 건너 채 냉장고에서 챙겨다가 북엇국 한 냄비 끓여 놨고.
 잡채는 네 덩이로 소분해 냉동실에 넣어뒀으니 한동안 먹거리 걱정은 없겠다.
 한 끼 더 먹을 잡채를 남겨둘 걸 그랬다.


  "아무리 글로 풀어먹고 사는 집안이라지만, 이 집 사내들은 말을 안 하면 생전 칼 갈아줄 생각을 안 햐! 외갓집에서는 외할아버지며 머슴이며 할 것 없이 말 안 해도 들일 다녀와서 낫 갈며 알아서 척척 갈아다 놨는데! 칼이 들어야 뭘 해 먹지!"
 부엌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던 어머님의 구시렁거리는 소리. 신경질이 묻어나는 도마 두드리는 소리 "탕, 탕, 탕" 그리고 이어서 들려 오는 그릇 굽에 칼 가는 소리 "득! 득! 득!"

 여전히 어머님이 쓰시던 그 칼.
 잡채 재료 손질을 하는데, 칼이 도끼다.
 어머니의 구시렁거리던 소리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건너 채 아줌마에게서 칼 갈아 달라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아주 오래전 새파랗던 어느 날인가,
 '이 사람아, 칼이 이렇게 안 들면 손 베는 겨!'라고 했다가,
 "칼 잘 들면 손 벨까 봐 겁나유! 차라리 안 드는 게 나아유!"라는 대답을 들은 이후로는 들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는데.
 아무리 가위가 칼이 되어버린 희한한 세상이지만,
 안 들어도 너무 안 든다.
 조만간 숫돌 구경을 시키던지, 어딘가 쑤셔박혀 있을 내 칼을 찾아 쓰던지….


 "하... 저주의 손인지, 신비한 손인지, 손만 데면 다 고장 나니 이젠 하다 하다 쇠못까지 뽑아놨네!"
 역시, 신비의 손 덕분인지 열리지 않는 조수석 문 손보러 카센터 나가기 전에 문단속하는데 1층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문 걸쇠의 못이 모두 가출하셨다.

 

 혀를 차며 구시렁거리다 아래를 보니, 계단 올라가는 소리에 우리에서 후다닥 뛰어나온 삼월이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다. 혀를 날름거리는 건, 불편하고 거북하다는 말씀이다. 내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저에게 하는 말로 들렸나 보다.
 그 날름거리는 혀를 보니 그냥 웃고 말 일이다.
 '그래, 너나 니 언니나 무슨 죄가 있것냐! 쇠로 용접해 놓지 않은 내가 잘못이지...'

 카센터에서 작은 사장이 끙끙거렸어도 해결하지 못하고 "문짝을 부숴야…."라는 결론.
 큰 사장님 퇴원하면 상의해서 결정하기로 하고  3시간을 허비한 헛걸음.
 어쩌다 하는 친정 나들이, 졸지에 사모님 모시고 다니게 생겼다.
 이놈에 똥차 님.
 없으면 아쉬울 테니 폐차도 못 시키고, 참 뜨거운 감자네.

 ~by, 20210602수

 

 

 


 
 202106032334목나훈아-비의탱고mix무각제의비
 토닥토닥 빗소리가 너무 좋아 음악을 꺼 놓았다. 서늘하다. 바람종이 울기 시작한다.
 차 때문에 승질나서 외상으로 잡은 소 : <두피부 스칼프 모이스처라이징 오일리 앰플 제형 250ml> <오휘 포맨 네오필 하이트레이닝 토너 135ml> <건강중심 저분자 피쉬콜라겐 1000달톤 분말 500g> <내추럴플러스 프로폴리스 1000, 180캡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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