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프다.
본문 바로가기
낙서/ㅁ안방

웃프다.

by 바람 그리기 2024. 4. 3.
반응형

 

 몹시 불쾌한 꿈에서 눈을 떴다. 며칠 전에는 슬하의 어린아이처럼 지나치게 유쾌하던 평상의 내가 "농약을 먹는 사고"가 있었고, 진균제인 그 농약은 '단 한 방울이라도 구강점막과 접촉하는 순간, 당장은 표가 안 나도 시간이 흐르며 발현되는 화학반응으로 인해 장기가 하나하나 녹아 들어가 시름시름 앓다가 꼴까닥'하는 백약무효 처치 불가의 극약인 걸 알고 있었는데. 그런 내 앞에 어머님께서 생시처럼 나타나셨고,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며 '아, 농약 중독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어디 먼 타국에 돈 벌러 떠난다는 핑계라도 둘러대고 나를 아는 모두의 기억에서 씩씩하게 슬그머니 증발해야겠다'는 다짐을 되뇌다 잠에서 깼다.
 내 추저분한 마지막을 들키지 않아야 하겠다는 조급함이 앞서, 모처럼 뵌 어머님께 반가운 인사도 못 올리고 황급히 꿈에서 도망치고 말았다. 꿈치고는 참 불쾌한 꿈이었는데, 곰곰 생각하니 마감일에 쫒겨 며칠 전 탈고한 시의 구절, "생사도 모르도록... 안부도 모르도록..."에 혼이 빠지도록 매달려 있었나 보다.
 그랬더니, 오늘 또 몹시 불쾌한 꿈을 꿨다.
 거두하고, 집 나간 아이에게 해코지하려는 청년의 중간을 막아서며 칼에 찔렸고. 찔렸어도, 그 상황을 마무리 짓기 위해 온 몸의 힘을 초인적인 의지로 쥐어짜다 번쩍 눈을 떴다. 눈을 떠 담배를 물고 꿈을 복기하는데, '내가 칼에 찔린 상황 보다, 해코지를 당할 만큼 행동했던 내 아이의 알 수 없던 원인과, 그 닥친 상황에 눈을 멍하게 뜨고 서있기만 하던 아이의 생시 같은 표정'이 떠올라 맘이 영 불편하고 불쾌하다. 

반응형

 새로 한 시 반이다.
 그제야 발치로 밀어 놓은 저녁 밥상이 눈에 들어온다.
 '염병, 또 노숙인처럼 쑤셔 박혀 잠들었었네... 쓰레기 내놓아야 하는데, 시간이 아직 창창하니 잘 되었다.'

 쓰레기봉투 채우기 위해, 서재로 안방으로 거실로 돌아다니며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빈 담뱃갑 한 트렁크쯤 모아 찌그려서 꾹꾹 눌러 담고 대문 밖으로 나선다. 대문 밖으로 나서려는데 쓰레빠 한 짝이 없다. 삼월이가 또 물고 갔으니 오늘은 밖에서 자는 모양이다. 굽이 다른 짝짝이 슬리퍼를 쩔뚝쩔뚝 끌며 나섰다. 비가 오셨는지 포도가 촉촉하게 젖었다. 어제 기온이 제법 높았으니 까딱하다가는 벚꽃이 피지도 못하고 다 지게 생겼다.

 쓰레기 내놓고 삼월이 집 앞을 지나치는데, 꼬리로 개집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오늘은 밖에서 자는구나. 그냥 편히 자지 않고 뭔 꼬리를 흔드니...'
 품에 안고 비몽사몽 잠에 취해 있을 삼월이 귀찮게 하기 싫어 슬리퍼 한 짝은 날 밝으면 찾기로 했다.

 맛있게 커피를 타고 앉아 담배를 먹는다.
 요즘 담배 맛이 영 신통치 않아 이것저것 사 놓고 맛을 보는데 거기서 거기다.

 담배 맛이 신통치 않다는 것,
 들이마신 만큼 내 안에 머물지 못하고 어느 곳으론가 새고 있다는 얘기다. 가슴에 구멍이 나 있다는 얘기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 수 있는 늙은 말이 되어 있으니, 종말에는 자연치유 하는 시간의 교훈을 믿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반응형

 메일을 열어 확인하고,
 모니터 앞에 붙여 놓은 포스트잇, 송고한 곳은 떼어 내고 새로 청탁 온 곳은 마감일을 적어 붙여 놓았다. 

 메일을 확인하다가 잠시 삼천포로 빠졌다.
 "10년도 훨씬 지난 어느 여름에 옵빠에게 보내온 음악 선물"
 옵빠라? 입가에 씨익 웃음이 번진다. 그 웃음의 잔향이, 열어 놓은 어제 포스팅의 배경 음악 '최성수의 남남'과 뒤섞인다.
 이 기괴한 조합에 기분이 묘하다.
 아마, <웃프다>라는 표현이 이보다 더 정확한 것은 없지 싶다.
 그래, 옵빠는 자알 있단다.
 동상일랑 '생사도 안부도 모르도록 그곳에 잘 계시게나...'

 어느덧 김수미 아줌마가 욕을 하고 창밖이 훤하다.
 오늘은 마감일 목전인 원고 잡고 매달려야겠고,
 볕 들면 삼월이랑 잠깐 놀아도 줘야겠고...

 

 
 202404030658수
 서영은-내안의그대
 주유,연기,아구통증.

-by, ⓒ 성봉수 詩人

반응형

'낙서 > ㅁ안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늙은 말, 당근 먹기.  (0) 2024.04.09
촌띠기들.  (2) 2024.04.07
술독에 빠져 죽을 넘.  (0) 2024.04.02
하... 졸려 디지것다!  (1) 2024.03.29
베짱이 된 날.  (1) 2024.03.2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