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올 차례 모시고 성묘 다녀오며 챙겨 갔던 포.
"반찬이든 국이든 낄여 잡쒀"라며 삼월이 언니께서 부엌에 던져두었는데,
한두 개도 아니니 냉동실에는 들어갈 공간이 없고, 아무리 귀찮아도 차례 모셨던 제물이 기온 올라가 곰팡이 피어 버릴 지경이 되도록 손 놓고 있을 수도 없고.
작정하고 쭈그려 앉았다.
굵은 토막은 찜을 만들고.
나머지를 무와 달달 볶고, 손질하고 남은 부산물은 삼베 자루에 담아 함께 우려 국 끓여 뒀고.
붴에 선 김에 냉동실에 토란대도 하나 꺼내 볶아놨다.
한동안 찬거리 걱정 없겠다.
여기저기 삐그덕거리는 몸이 영 회복이 안 된다.
그래서 종일 굶었다.
잘했다.
도끼로 찍어 놓은 나무에 이듬해 풍성하게 맺히는 열매처럼, 종일 곡기를 끊은 덕에 저녁 무렵이 되어 몸도 가벼워지고 정신도 맑아졌다.
잘했다.
결국, 내 기억에 평생 남을 이, 기억될 이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 지금은 없는 이.
내가 눈 감는 날에야 비로소 망각과 교차 될 이.
202303022954목
Amalia_Rodrigues-Maldicao(어두운 숙명)
할일은 밀렸고, 눕고는 싶고...
반응형
'낙서 > ┗(2007.07.03~2023.12.3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리하다. (0) | 2023.03.05 |
---|---|
이상한 일들... (4) | 2023.03.04 |
이랴! 달려봅세, 늙은 말아! (1) | 2023.03.03 |
대관람차가 멈춘 곳. (4) | 2023.03.03 |
생각하다. (1) | 2023.03.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