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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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청와대 국민청원

by 바람 그리기 2022.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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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isode 1

 

 화장실 다니러 건너채에 갔다 나오며  아내에게 지나가는 말로 묻는다.
 '어째 아드님이 안 보여?'
 대답을 듣기 전 안채로 건너서려는데 얼핏 눈에 들어온 아내의 표정. 문을 열고 딛던 발을 멈추고 다시 묻는다.
 '어디 갔어?'
 순간 아내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변비 걸린 염생이 똥 같은 말들을 톡, 톡, 떨어트린다.
 "며.. 칠. 됐.. 어. 요..."
 '뭐가?'
 "안 들어온 지가..."
 '왜? 뭔 일인데?'
 "..."
 '직장은? 직장엔 나가는 겨? 전화는 해 봤어?'
 "..."
 '뭐여, 도대체! 일 저질렀구먼. 직장도 안 나가고! 그러면 나한테라도 얼른 얘기해서 돌이킬 수 없기 전에 서둘러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묵언수행하고 있는 겨! 직장에서 잘리기 기다리고 있는 겨?'
 비단 이번뿐 아니라, 아내의 이해할 수 없는 묵언은 이제 그녀 자체다. 이해할 수 없는 자체가 그대로의 그녀임을 인정하며 살아오고 있지만, 이럴 때마다 치미는 부아까지는 어쩔 방법이 없다.

 내 커진 언성을 안채에서 듣고 아버님이 다가오신다.
 "또 무슨 일들로 그러는 겨! 동네 챙피해서 아주 징글징글해 죽것다!''
 "실은 아들이 일을 저지르고 며칠째 집에 안 들어오고 있어서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아내가 대답한다. 연이은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아버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며느리를 꾸짖으신다.
   "그런 일이 있으면 일 더 커지기 전에 얼른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부모가 뭐니? 어른이 뭐여? 서로 상의해서 고민하고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부부가 뭐니? 에이... 애비는 소리 지른다고 벌어진 일이 해결돼? 애미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혼자만 알고 입 다물고 있는 건지. 오죽하면 집에도 못 들어오는 애 생각을 해야지. 애미야, 얼른 전화해서 집에 안 들어온 거 아무도 모르고, 저지른 일도 해결했으니 아범 알기 전에 얼른 들어오라고 하거라!"

 아내가 전화기를 귀에 붙이며 마당 저쪽으로 가고 있는 동안, 폭발 직전의 압력솥처럼 울그락불그락  식식거리는 내게 말씀하신다.
 "자식 키우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있기 마련이다. 누구나 실수는 하는 거고, 몸만 어른이지 아직 애들 아니니. 애비는 아들 들어오걸랑 아무것도 모른척하거라. 나무라지 말고, 조용하게 저지른 일이나 해결할 궁리 하고!"
 '예. 사내놈이 이럴 수 있고 저럴 수 있는 건 이해하는데요. 도대체 혼자 해결할 능력도 못 되면서 일 저지르고 잠수 탄 지 며칠이 되도록 입 다물고 있는 며느리에게 부아가 치밀어서요....'

 한바탕 소란이 휘돌고 채 한 시간이 되지 않아 아들이 들어왔다. 도둑고양이처럼 제 방으로 들어가려 마당을 가로지르는 것을, 현관문을 열어 넣고 담배 피우시던 아버님이 불러 세운다.
 "우리 대주. 무슨 일 있었어? 일이 있으면 할아버지한테라도 몰래 사정 얘기를 해야지. 할아버지 손자가 그러면 써?"
 그동안 앞선 길 따라 한눈 한 번 안 팔고 듬직하게 잘 따라오던 착한 아들. 도대체 며칠 동안 어디서 무얼 하며 지냈는지, 흡사 꽁지 빠진 암탉같이 꾀죄죄하게 변한 몰골로 할아버지의 다독임에 맹구처럼 웃고 앉아있다.

 맹구 건 삼용이 건, 일단 멀쩡하게 내 눈앞에 보이니 긴장했던 몸에 힘이 풀리며 배가 고파온다. 맹구의 머리를 쓸어주며 등을 토닥이는 아버님을 현관 뒤편에 숨어 귀 반, 눈 반으로 지켜보다가 그제야 담배를 꺼내물며 슬그머니 뒤돌아섰다.


 

 

 

 episode 2

 

 아내를 못 볼 곳에서 봤다.
 구린 과거 행실로 평이 좋지 않은 돈 많은 건달 L과 함께 oo모텔에서 나오는 모습을 봤다. 아내는 고개를 어정쩡 숙이고 L에게서 한 걸음 떨어져 뒤따르다 사 거리 근처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내의 부인할 수 없는 외도를 목격하고도 이상하리만큼 맘이 담담하다. 노여움이나 배신감이나 당황스러움도 없이, 바람도 멈춘 고비사막 한가운데의 모래알처럼 그저 찰기 없이 푸석일 뿐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조바심이 났다.
 '나 말고 누가 또 봤으면 어쩌지...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지... 그 소문을 아이들이 듣게 되면 어쩌지...'
 큰일 났다. 엄마의 바람을 알게 되는 날에,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니 정말 큰일 났다.
 '염병, 하필이면 그 질 않은 놈이랑 바람 날게 뭐람! 바람을 필려면 외진 곳이라도 가던지, 대낮에 동네랑 다름없는 시내 한가운데서... 고기 맛 본 스님 절간에 빈대가 안 남아난다더니!'

 우선은 내가 모른 척 침묵하는 것이 최선이다. 침착하자.
 "일찍 들어오셨네요?"
 집으로 돌아오니 평소보다 아주 조금 활기찬듯한 아내가, 셋째가 먹고 싶은 것 있다고 같이 장에 가잔다. 셋째를 가운데 세우고 서로 아무 일 없었던 듯 도로 집을 나섰다. 사거리 농협 앞 공중전화 근처에서 까부느라 뒤처진 셋째와 아내를 기다리며 서있다. 그 잠깐 사이에 '아이들 모르게 이 사태를 어찌 해결할까?'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 계산기를 연신 두드렸다. 
 약국 앞에 나와 아들의 손을 잡고 어슬렁 거리던 약사가, 나와 저만큼의 셋째와 셋째를 재촉하는 아내를 연달아 힐끗거리더니 머뭇머뭇 말을 건넸다.
 "OO아빠세요?"
 '아, 녜'
"그러시군요. OO이랑 우리 진식이랑 같은 반입니다. 친한 친구예요. 우리 집에도 놀러 왔고요"
 '아, 그렇군요. 진식아 반갑다!'
 약사 아들 진식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동안 셋째가 있는 곳을 흘깃 바라보던 약사가 짧게 되물어온다.
 "그럼, 저기 오시는 분은 와이프 되시고요?"
 '녜. OO이 엄맙니다"
 "아... 그렇군요"
 조금 난처한듯한 눈빛이 순간 스쳐가던 약사가 아들 손을 잡고 약국으로 들어간 후, 이번엔 아내와 셋째를 앞세우고 시장으로 향했다.
 약국에서 얼마 안 떨어진 시장 입구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누가 내 손을 슬쩍 건드린다. 무슨 일인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무언가를 내 손에 쥐어준 약사가 벌써 약국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시장 안 명동분식 좌식 식탁에 앉아 떡볶이 나부랭이를 먹는 셋째와 아내를 바라보며 손에 쥐여준 쪽지를 펼쳐보는데, "OO이 친구 이름"으로 서두를 달고 열댓 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쪽지를 셋째에게 건네며
 '셋째, 얘들이 너랑 절친여?'라고 물어보니 아니란다.
 '그럼 혹시, 너 괴롭히는 얘들여? 이거 조금 전에 진식이 아빠가 준건디?'
 셋째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아무런 대꾸 없이 짭짭 소리를 내며 떡볶이만 먹는다.

 저녁.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마친 큰 애가 돌아왔다.
 '세 자매가 다 모였으니, 아빠 속마음도 모르고 또 깔깔 웃음꽃이 피겠네...'
 건넛방에서 금방이라도 들려올 재잘거림을 생각하며 한 다리를 괴고 방바닥에서 누워 팔을 이마에 올린다.
 '아이들 저 웃음소리가 멈출 일이 없어야 하는데....'
 오늘따라 형광등 갓 뒤편이 유난스레 깜깜하다.

 이상하다. 큰 애가 씻고 방으로 들어간 지도 꽤 되었는데 건넛방이 조용하다. 아내의 설거지하는 물소리에 섞여 야트막한 소곤거림이 토막토막 들려온다.
 '그래?... 증말?... 아까... 어떻게?... 진식이…. 쪽지... 아는 애들... 엄마는?... 모르지...'
 무심코 들려온 모스 부호들을 몇 번을 되뇌다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그렇게 멍한 정신으로 하루가 지나고 진식이 아빠를 찾았을 때,
 "OO이가 걱정돼서요…."라는 말과 함께, 어제 들은 아이들 대화의 내 막연한 조합이 옳았음을 확인받았다. 셋째와 같은 반에서 아내의 외도를 알고 있는 아이들의 이름이라 했다. 어떤 애는 셋째의 고백을 통해 알게 되었고, 어떤 애는 부모에게 듣고 셋째에게 사실을 물어본 애들이라 했다.  다행인 것은, 친구 엄마가 바람피우는 것을 알고 놀리거나 흉보지 않고 다 같이 편이 되어 감싸고 위로하며 지내고 있단다.
 다시 찾아와 확인할 수 없는 창피한 일이니, 이참에 얼굴에 철판 깔고 내친김에 다시 물어봤다.
 '혹시, XX는 아나요? △△는요? 그럼 이 뒷길 주점에 □□는요?'
 내가 아는 이, 자주 들리는 곳, 지나쳐 가는 곳... 이 사람 저 사람들을 확인했지만, 결론은 나만 모르고 온 동네, 시내에 하다못해 학교 아이들에게까지 소문 퍼진 것이 오래고 본인은 둘이 함께 가는 모습을 보는 게 심심치 않을 정도라 한다.
'허...'
 김 빠지는 소리를 내며 뒤돌아 나오는 나를 보고 약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측은했을까? 불쌍했을까? 한심했을까? 멍청했을까?
 평상의 시간은 다를 것 없이 무심하게 돌아간다. 다시 저녁이 오고 밥을 먹고 아내는 설거지하고 나는 어제와 똑같이 누워 아내를 섬으로 두고 휘돌고 있는 이 어색한 침묵을 어찌 해결할지 한숨을 오르 쉬고 내리 쉬고 있는데, 또 건넛방에서 들려오는 소곤거림.
 '청와대…. 언니가?... 몇 명?... 와... 몇 명... 대답... 아빤?... 엄만?...'

 벌떡 일어나 앉아 폰을 들고 짐작 가는 곳을 연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가슴이 뜨끔한 글을 찾았다. 엄마를 향한 아빠의 폭력에 무서워 떨던 어릴 적 불행한 기억의 각인을 하소연하고 있었다. 낱말마다 문구마다 분노로 가득했다. 한 여자의 일생을 망가트린 못된 남자의 과거가 있었다. 우울증에 시달린 불쌍한 엄마가 있었다. 그 불행한 현실 속에서도 네 자식을 위해 사랑과 자애로 희생한 엄마에 대한 고마움이 있었다. 그런 인간이 어찌 시를 쓰냐고 사회적 지탄을 받고 매장해달라는 하소연이 있었다.
 설마... 설마... 지금 왜? 하필이면 지금 내게 왜?
 설마 하는 맘은 첨부된 링크를 열어보고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열린 링크엔 괴물 같은 내가 웃고 있었다.

 지금. 아내의, 애들 엄마의 외도에 가장 큰 상처를 받은 내게. 그런 지금의 내게 큰아이가 왜 그럴까? 한참을 생각했다. 아내의 외도 때문에 사회적 논란을 부를만한 과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물리적 폭력은커녕 내색도 하지 않고 있는 내게 큰아이가 왜 이럴까?  한숨을 크게 내쉬며 무심코 둘째의 SNS를 열었다.
 '하...'
 큰아이가 올린 청원 글을 링크 연결해 올리고 그 아래에는 말줄임표의 침묵.
 "..."

 담배를 다시 물고 깊게 빤다.
 이쯤이면 확실하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누구이고, 내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엄마의 부정을 알게 된 아빠"의 상황보다 "엄마가 자신의 부정을 아빠가 알게 된 것을 알았을 때" 그때 벌어질 엄마의 상황을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그런 상황을 감당할 수 없는 엄마"라고 느끼고 있거나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엄마가 할 예측 못 할 선택"을 막기 위한 경고요 협박이라는 것을.
 한편으로는 참 현명하다는 생각에 기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몰아치는 서운함을 감당할 수 없다.

 내가 그토록 염려하던 "아이들에게 비밀"은 진작에 깨진 것이었으니 이젠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보아야지, 세상천지에 호구가 되고 아이들에게도 외면 받으며 이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떤 것이 가장 옳고 현명한 길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국민청원> 글만 아니었더라도 결론이 여기에 닿지 않았을 텐데, 모든 상황을 미루어 낸 답은 나의 깨끗한 소멸밖엔 없다. 모든 걸 안고 사라지는 게 정답이다.


 유서를 써 내려간다. 처음엔 내 선택의 이유, 그리고 아이들 부탁하는 말과 고마운 이들에게 감사하는 맘을 구구절절 썼다. 그랬다가 선택의 이유를 지웠다. 아내의 외도를 묻고 가는 게 맞는 거다. 그건 사랑도 아니고 치졸한 복수다. 그러고 다시 읽어보니 너무 구구절절이다. 큰아이의 청원이 이슈가 되어 자칫 내 유서가 남의 손에라도 닿게 되는 날에는 참 곤란한 상황이 되겠다.
 뉴스 잡담 코너에 내 유서를 잡고 "사용된 낱말이 어떻고, 문장이 어떻고..." 떠들고 있을 심리학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러니 이 사람은 딸의 청원 때문에 죽은 게 아니다"라고 해 준다면 고마운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큰 애는, 내 딸들의 운명은 또 어찌 되겠는가? 그래, '안녕' 두 글자면 족하겠다.
 '안녕'이라는 두 글자만 쓰고 '사랑하는 아빠가, 사랑하는 남편이, 사랑하는 동생이, 사랑하는 친구가, 사랑하는 그대에게'로 끝을 맺고 봉투에 넣었다.

 

 

 

 

 오줌이 마려워 끝을 못 봤다.


 여전히 그대로인 아버님.
 정말 오랜만에 뵈었는데, 거기서도 속을 썩이고 있으니...

 그 못나고 불쌍했던 사내의 결말이 궁금하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202202133237일
 Engelbert_Humperdinck-Am_I_That_Easy_to_Forget
 배고프고 머리 아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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