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한 동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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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ㅁ안방

허무한 동침.

by 바람 그리기 2024.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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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과: "잘 오셨습니다. 환자분 같은 상태에는 보통 두 달 정도는 잡수셔야 합니다"
 ↘신경외과:"이상하다? 왜 자꾸 재발하지? 요렇게, 요렇게 운동해 주셔야 합니다. 이러다가 오십견 오게 생겼는데요..."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도 못 막을까 봐 작정하고 나들이한 병원.
 내과에서는 다시 한 달 치 약을 처방받았는데, "식전 약" 때문에 또 난감하다. 열흘에 여드레는 밤을 꼬박 새우니, 새우며 커피를 마시니, 도대체 "공복의 식전" 기준을 어디에 둬야 하는 겨?
 신경외과, 벌써 네 번째인 주사. 이렇게 계속 맞아도 되는지 물어보니 "일주일" 지나면 괜찮단다. 그런 걸 보면 스테로이드제는 아니고 항생제 종류 같은데... '이러다 정말 수저질도 못 하것다'는 생각에 '오래전 무릎 손 봤던 D시 전문 병원에 다녀와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는데, 일주일 텀으로 맞을 수 있는 주사라니 다행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껌으로 붙이는 짖을 계속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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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술하며 든 생각.
 "빈속에 약 타오며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미친..."

 

그렇다.

내 손으로 밥은 떠먹어야 하니, 주사 맞고 처방받은 약 한 봉다리 들고 다이소 들러 "상쾌하고 은은한 풀 향" 디퓨저 한 병 사서 휘적휘적 돌아오다가 습관처럼 들린 방앗간. \바닷가에서_큰 별들

sbs090607.tistory.com


 대문을 밀치고 들어 오는데, 삼월이가 골목 끝까지 쫓아 나와 배꼽까지 뛰어오르며 반긴다. 이 과한 환대, "바깥채 문 열어 주는 남자"로 인식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바깥채 문을 슬그머니 열어 주고 안채로 들어왔다. 삼월이 쫓겨나는 소리가 들린다. 신문지를 깔고 삼월이를 들였다. 삼월이를 방에 들였다는 것은 술에 취했다는 증거다. 소주 한 병 맥주 세 병에 맛이 갔다는 얘기다. 
 "꼬리치지 마 이년아! 털 범벅 만들지 말고!"


 개한테 똥을 참으라는 얘기다. 꼬리로 방바닥을 어찌나 세게 두드리는지, 남들 들으면 정 읽는 북 두드리는 거로 알 정도다. 따뜻하게 불 넣어 준 매트를 놔두고 자꾸 거실 문 앞 차가운 냉골로 가 앉는다. '나가고 싶은가?' 싶어 문을 열어주면, 나가지는 않고 빤히 올려보며 앓는 소리다. 아마 바깥채 문 열라는 소리 같다. 라면 하나를 삶아 크게 한 젓가락을 건져 헹궈주니 국물까지 잘 처먹는다. 둘이 그렇게 앉아 그릇을 비웠을 때, 대문 기척이 난다. 아마 건너 채 배달 음식이 왔지 싶다. 삼월이가 밖으로 귀를 세우고 또 안달이다.
 문 열어줬다.
 나갔다.
 눈 떴다.
 새로 세 시 반이다.
 우리의 동침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어깨가 거짓말처럼 말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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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의 급작스러운 우울.
 생각하니 지금 내 일상이 고요한 수면과 같다는 얘기다. 잔잔하다는 얘기다. 그러면 꼭 그랬다. 평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못된 버릇이다. 특히 겨울이면 늘 그랬다. 오죽하면 겨울이 목전이면 겁이 나고, 언젠가 내가 죽는 계절은 겨울이 틀림없을 거라고 여겨왔다. 젊어서는 그때마다 사고도 많이 쳤다. 한번 그렇게 앓고 나면 반년은 그럭저럭 흘러갔다.
 어제의 급 우울,
 사고 친 것도 없고 실수한 것도 없지만 분명 그 시절의 그 감정이었다는 것을 안다. 나이가 드니 그 강도가 옅어지고 짧아졌다. 나이가 드니 이런 생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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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국 길 건너 시장 입구 다이소에 고장난 충전 케이블 사러 들린 김에 3,000원짜리 중국산 디퓨저 두 병을 샀다.
 후가공 덜한 '시가'류의 담배를 피우다 보니 냄새가 다른 담배보다 독하다. 어쩌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농번기 마치고 섰다판 벌이는 60년대 시골 공회당 문을 연 것 같이 역겹다. 가끔 그렇다. 1,000원짜리는 몇 번 사봤는데 다 실패였다. 
 "상쾌하고 은은한 풀 향"이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대중목욕탕에 놓인 스킨(남탕에는 이런 거도 있다) 냄새랑 똑같다. 어쨌건 대굴빡이 안 아프고 콧구녕이 시원하니 성공이다. 중국산 디퓨저가 어떤 부작용을 부를지 못 미덥지만 일단은...


 거실 진열장과 서재 뒤편 비품 선반에 하나씩 올려 두었다.
 예전, 향초와 향수 보내주셨던 서울의 착한 정 작가님,
 좋은 글 쓰시며 잘 지내시는지 궁금하다.

 
 202402270632화
 진주조개잡이
 아프면 병원 가는 것이 맞긴 하다.
 삼월이 개털 털어내려고 눈 뜨자마자 한 밤중에 비질.
 약(내과/신경과). 어깨주사. 충전케이블. 무선충전기. 디퓨저. 세금. 

 -by, ⓒ 성봉수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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