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잔칫상
본문 바로가기
낙서/ㅁ안방

환갑 잔칫상

by 바람 그리기 2024. 5. 1.
반응형

 

 술밥 먹고 돌아와 탄 커피가 기똥차게 맛있다.
 이 맛난 커피의 찰나를 남기려는데 때맞춰 울린 SNS 도착 알림음.


 확인하느라 폰 집어 들다 쏟았다.
 자판으로 서재 바닥으로 난리다.
 휴지로 둘둘 말아 대충 훔쳐 놓고 핑계 김에 방에 들어가 그대로 쪽 뻗었다.

 _20240426금

반응형

 쪽 뻗었다가 일어나 바깥채 식구들과 동선 겹치지 않기를 기다리며 뉴스 보며 담배만 잡고 있다가, 시간 돼 건너가 씻고 문단속하고 잡부를 나서는데 대문이 잠겼다. 
 '어! 이 시간까지 대문이 잠겼으면 아무도 출입이 없었다는 건데, 뭐여!'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얘진다. 서둘러 다시 들어가 쇳대로 바깥채를 따고 방문을 연다.
 "왜 이라는 겨! 왜 이랴!"
 요 위에 자벌레처럼 엎드린 삼월이 언니의 거두절미한 가시 돋친 단말마를 듣고서야 토요일인 걸 알았다. 어쩐지, 씻으러 건너갈 때 아무도 없는 컴컴한 바깥채에 삼월이가 자꾸 따라 들어오려 해서 이상했다.
 
 잡부 내내 머릿속에 뱅뱅 돌던 의문,
 '뭐가 왜이랴? 내가 뭘?'
 
 떡 본김에 제사 지낸다더니, 어제 커피 쏟은 덕에 기억도 없는 얼마 만에 서재 바닥 걸레질했다.

 _20240427토/현대문예청탁 송고(2)

반응형

 처가 가서 환갑 잔칫상 받고 왔다.
 어제 잡부에서 돌아오니 삼월이 언니께서 뜬금없이 말씀하신다.
 덕분에 계획했던 일정이 빠그러들었지만 도리 없는 일이잖는가?
 환갑상이라니? 동거인 옆방 아저씨도 아니고, 안채 뒷방 독거노인에게 무슨 감정이 남았기에 이런 깜짝 이벤트라고라고라? 나를 사랑하는가? 그려, 나를 사랑한다면 고것은 고거여. 인류애에 근거한 측은지심이다 이 말이쥐.


 안면도 갑오징어 숙회에 궁전 왕족발에 잡채에 후식으로 먹은 금수박까지.
 워쨌건, 손위·아래 동서 부부와 아래·위 처남까지 모두 출동하야 환갑잔치 잘혔다.

반응형

 ↗아래 마당에 걸렸던 커다란 그늘막 속에 국수 그릇을 잡고 앉은 인파들의 흥청거림이 전부인, 초등학교 입학 전 희미한 기억 속의 할아버지 환갑연.
 ↗당고모들이 숨어 저고리 고름에 눈물을 찍어내던, 혼자되신 작은 할머님의 회갑연. 그때 처음 들은, 귀가 부처님 귀 같던 동네 아주머니께서 신명 나게 장구를 두드리며 불렀던 각설이 타령.
 ↗청요릿집 원산대반점 아래위층으로 종일 가득 찬 하객께 친구들과 음식 나르기 바빴던 아버님과, 내외분이 풀 먹인 모시 저고리를 차려입고 맞았던 어머님 화갑연
-
그때, 교제 중이던 삼월이 언니께서 부모님 커플 찻잔을 사 들고 참석하셨는데, 사진사가 "여기 보세요" 하는 순간 큰 누님께서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하신 말씀, "얘, 아가씨도 같이 찍으라고 해" "은정 씨, 얼른 이리 와서 같이 찍어요". 삼월이 언니가 넙죽 일어나 함께 박은 그 사진이 큰 누님의 고단수 시험이자 술수인 줄 몰랐으니 원... 그 후 심각하게 절교를 고민하며 상의드렸더니 "애! 어머니 환갑 사진까지 박아놓고 이제 와서 그라면 어떡한다는 거야! 부모님 회갑 사진도 못 걸어놓게 만들려고 그러니? 니 동생이라고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봐. 어찌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니!" 하시며 뒤지게 혼내키셨는데. 지금 곰곰 생각하니, 진짜 누가 고단수였는지 헷갈리넹?-  
 ↗그리고 내 기억 속의 마지막 행사, 삼월이 언니 부모님 합동 주갑연.
 그때, 김세레나의 "짚세기 신고 왔네"를 축가로 불렀던 것이 어제 일 같은데...

 어, 하니 양친님 떠나시고. 먼저 떠나신 아버지 생각에 숨어 눈물을 찍어내던 당고모님들은 생사 안부도 모르도록 소식 끊긴 것이 기십 년이고, 종일 음식 나르느라 고생했던 친구들도 이제 올해 현직 마지막 두 명도 은퇴하고...
 내가 노인 인증상(床)을 받았으니,
 세월이 이리 빠를 줄 비린내 나는 천둥벌거숭이 시절엔 어찌 알았으리오.

 

 
 202404282411일
 김세레나-짚세기 신고 왔네.

 -by, ⓒ 성봉수 詩人

반응형

'낙서 > ㅁ안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망중(忙中)에.  (0) 2024.05.03
천공 스승과 로또 비법  (0) 2024.05.03
명복을 비노라~!  (1) 2024.04.26
고추 보다 화초.  (0) 2024.04.25
이밥 앞에서.  (0) 2024.04.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