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 앞에 앉았다가 손을 더듬적 거리니 폰이 안 보인다.
서재에 있는가? 없다.
부엌으로 바깥 샘으로 마당 의자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유선전화로 신호를 보내도 묵묵부답이다.
'어?'
불길한 예감.
'화분에 물 주며 옥상에 놓고 왔나?'
비가 드세게 한참을 뿌린 후이니 이 불길한 예감.
유선으로 다시 신호를 보내 놓고 후레시를 비추며 옥상으로 올라간다.
하...
내려오자마자 잽싸게 배터리 분리해 전원부터 죽여놓고.
내용물이 모두 젖었을 정도니, 커버의 가죽은 퉁퉁 불었다.
쭈글쭈글 퉁퉁 분 모습을 보니. 내가 의도했던 엔틱과 빈티지는 거리가 멀고 그저 꼬잘꼬잘 더럽기만 하다.
지폐와 카드를 수납하는 공간이 통일공화국을 이루려는 것을 살살 달개서 쓰고 있었는데, 내린 비에 제방이 모두 허물어져 결국 상시 국경개방의 자유 지대가 되어버렸다.
천연 소가죽인 데다가 지퍼 수납공간이 별도로 있는 제품이라서 비교적 고가임에서 선택했던 두 번째의 동일 모델. 문제는 역시 같은 곳에서 발생했다. 어쩔 수 없이 커버 하나를 새로 주문했는데, 이번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딱 반값인 것으로 선택했다.
핸드폰에 커버를 씌워 다니는 이는 연령대로나 경제적으로나, 딱 중간에 축을 둔 계층. 사실이 어떻건, 커버로 인해 받는 편리함은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그나저나, 왜 비 쏟아질 날에 화분에 물은 주러 올라가서 이 난리를 쳤는지.
궁금하신 분은 스피노자 아저씨께 여쭈라.
그제,
마트에 들렸을 때 박카스 세일 전시품이 보인다.
"나는 쌍화탕보다 박카스가 쵝오여!. 집에 사서 쟁여 놓고 조금 피곤하면 한 병 마시면 거뜬하더라고!"라던 영희 양이 생각났다.
'영희야, 잘 지냈어? 봉수여. 두루 일없지? 마트 왔다가 박카스 진열해 놓은 거 보니 생각나서... '
"응 그래. 너도 잘 지내지? 그런데 바깥에? 바깥에 왜?"
'아니, 박카스가...'
"그래, 바깥에서 뭐?"
하, 철수가 이빨 빠진 할배가 되었으니 영희라고 귓구멍이 온전하겠는가?
'아구구'소리를 추임새로 눈을 뜬 새벽, 갑자기 영희 할매가 되묻던 "바깥에"가 떠올랐다.
'영희야, 바깥 날씨 더우니 나가 싸돌아댕기지 말고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라고!'
202107190538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