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내 쉰의 마지막 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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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잘 가라, 내 쉰의 마지막 달아.

by 바람 그리기 2022.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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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님 할아버님 계셨던 어린 시절엔, 양 부모님과 고만고만한 딸아들 대가족 식구들과 4촌 5촌은 물론 6촌 일가에 왕고모 할머님과 외가 쪽 일가까지 명절 이쪽저쪽에 인파가 쉼 없이 들락날락했던 집.
 한 분 두 분 세월에 밀려 옛 얼굴이 되어갔지만, 하나둘 늘어나는 매형들께서 그 자리를 대신하고 더불어 새로 탄생한 조카들이 앞 선 얼굴의 빈자리가 모자람 없이 우당탕거렸는데, 조부모님에 이어 양친께서도 돌아가시고 나니 친정을 찾는 누님들의 발길도 끊겼고, 코로나 여파로 숙부(叔父)님 봬 온 지 오래이니 당연히 하나뿐인 사촌 동생 가족과의 왕래도 멈췄다.

 밤송이가 여물지도 않은 올 이른 추석.
 멀리 오대리아(澳大利亞)에서 캥거루 타고 개장사하는 둘째야 그렇고, 일손을 거들겠다고 생각했던 셋째는 아침 일찍 차례도 모시지 않고 슬그머니 독서실로 내빼고, 셋째가 토꼈다는 소식에 집 나간 첫째도 오지 않고.
 돌아가며 대주와 집사 하며 모신 썰렁한 한가위 차례.



 내 지난 한때는 음료수라도 사들거나 어머님이 끊어주신 고기를 들고 여기저기 인사 다닌 시절이 있었지만, 성묫길에 늘 들려 인사하던 선산 아래 노인들도 다 돌아가셨으니 그나마 장만하던 추석 선물도 살 일이 없어졌다.
 세상사가 별수 없이 돌고 도는 거지만, 다소 번거로워도 북적거리던 시절로부터의 단절에 맘이 불편하고 쓸쓸하다.
 명절이 끝나고 돌아가는 모두를 배웅하고 들어서던 오래된 집 마당에서 느끼던 서운하고 황량하던 쓸쓸함.
 가슴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그 알싸한 감정이 차례를 올리기 전부터 내 맘을 무겁게 하니, 이 모든 오늘이 내 지난 시간의 헛발을 증명하는 모습처럼 생각되어 참으로 속상하고 서글프다.
 블로그를 하며 때마다 올리던 덕담조차 올해는 하지 않았는데,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내게 읊조렸지.
 '인정하자. 늙었구나...'



 성묘 마치고 처가 다녀와 배추 모종에 물 주고 나니 월출 시각이 가까워졌다.
 밝기의 정도가 100년 만에 최고라 하고 앞으로 38년이 지난 2060년께야 볼 수 있다는 이번 보름달.
 그러니 일찍이 내가 보지 못한 달일뿐더러 2060년이면 내가 세상에 발 딛고 있을 확률이 0%이니 특별한 달이다.
 예전 어머님 살아 건강하실 제는 어린 손주들 손잡고 여중 위 다리로 달맞이를 가시곤 하셨는데, 당신보다 못 난 내가 어찌 달 앞에 빌 일이 없겠는가?
 티브이 "불후의 명곡"에 턱을 빼고 침 질질 흘리며 앉아 있는 삼월이 언니를 뒤로하고 슬그머니 나와 지평선이 보이는 수원지 뒤 육교 위로 바삐 달맞이를 나섰다.
 서쪽 하늘에 펼쳐진 노을의 장관에 감탄하며




 멀리 청주 KTX 역이 바라보이는 하늘을 주시하는데, 예보와는 달리 하필이면 구름이 잔뜩 꼈다.



 월출 시각이 10분을 넘기도록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다리다가
 문득 고개 돌려 오가는 차도 멈춘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매듭이 풀어져 바람에 펄럭이는 플래카드 앞에



 "네 이성은 아니겠지만, 명쾌히 손 놓지 못하고 줏대 없이 펄럭이는 나 닮은 구차한 미련"을 읊조리며
 가시지 않는 구름과 어두워진 하늘에 달맞이를 포기하고 돌아섰다.



 그래도,
 내 생에는 보지 못할 달.
 내 50대의 마지막 보름달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 없다.
 '이제는 보이겠거니...'
 자정을 넘겨 옥상에 올라 삼십 분은 기다리다가



 그중 옅은 구름 뒤에 가렸을 때 간신히 마주하는 거로 만족해야 했다.



 동생이 바꾼 폰으로 찍어 보낸 보름달.
 이 정도면 일반 카메라 못지않게 훌륭하니 참 좋은 세상이다.




잘 가라,
내 오십 대의 마지막 달아.

 


 


20220910토한가위
NINI ROSSO-WONDERLAND BY NIGHT(밤 하늘의 부르스)

-BY,  ⓒ  詩人 성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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