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황설, 2021 한식.
본문 바로가기
낙서/┗(2007.07.03~2023.12.30)

장황설, 2021 한식.

by 바람 그리기 2021. 4. 18.
반응형

 

 

 

 4이 열리고 한식이 다가오며 선영 잔디 보식하러 갈 적당한 날을 살핀다. 산 전체가 돌도 아니고 흙도 아닌 토질에다가 부모님 산소에는 뜨는 해 지는 해 구분 없이 종일 햇볕이 드니, 잔디 생육이 여의치 않다. 어머님 돌아가시고 아버님 곁에 모시며 새로 조성했던 묘소. 잔디에 붙어있던 흙이 4년이 지나니 모두 떨어져 나간 데다가, 두더지와 고라니가 하도 헤집어 놓아 한쪽 법면이 형편없다.
 여건이 그러니, 보식 후 비가 내릴 날을 잡아 식구가 총출동해 양손에 한 뭉치씩은 떼 단을 들어 날라야 하는데...
 휴일인 청명(4)에는 종일 비가 내렸으니 움직일 생각을 못 했고, 한식이자 식목일이었던 5일에는 비도 오지 않았고 평일이니 가용할 손이 없어 못 움직였다.
 한 주 후 월화(12, 13) 이틀간 비 예보가 있어 돌아오는 일요일(11)이 최적의 조건을 갖춘 날이다.

 평생을 장독대 정화수에 손 비비던 종갓집 안주인이 뒤늦게 어린 양으로 개종하고 조상님의 기일을 그냥 건너뛰면서, "마음이 영 서운하고 죄짓는 것 같아 개운치 않더라"라던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잔디가 잘 활착될 적당한 날을 잡느라 한 주 뒤로 미룬 것인데도, "한식날" 찾아뵙지 못한 마음이 일주일 내내 똑 그 마음 같았다.

 금요일.
 말 꺼낼 틈도 없이, 정신 나간 여자가 정신 나간 딸에게 가고, 군인 아드님은 얼굴 마주할 기회도 없이 주말 내 취침 전투에 들어갔다.
 월요일 오후부터 시작해 화요일 내 비가 온다는 예보이니, 일요일에 틀림없이 다녀와야 하는데 난감하다.
 "떼만 옮겨 놓으면 월요일에 나 혼자라도 일찍 가서 보식하면 되겠는데 사람이 없으니..."
 그렇다고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찌 되었든 힘닿는 대로 하기로 하고 우선 떼라도 사서 차에 실어 놓아야 일이 되겠어서, 행사 중인 산림조합 묘목 판매장에 전화하니...
 "지난주 비 오면서 다 팔고 딱 한 평 분밖에 없어요"
 허... 나를 사람은 고사하고 보식할 떼가 없으니 큰일이다.
 예전 눈동냥의 기억을 꺼내 조급히 자전거를 타고 시장 뒷길 장의사에 들렸다.
  "그전엔 팔기는 팔았죠. 지금은 나 혼자라..." 때 절은 석관 몇 개를 지키고 앉은 아주머니께서 근처의 꽃상여 집을 알려주신다.
 (아이고, 살았다!)
 옆 골목, 예전 꽃상여 만들던 상포사에서 떼 열 묶음을 사 맞춰 놓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하길,
 '아드님께 양손 두 묶음씩 네 묶음을 날라 달라고 나도 그리 들어 올려놓고, 내일 아침 일찍 나머지 두 묶음과 장비 챙겨 올라가면 되겠구나!'

 집에 돌아와 차 열쇠를 챙기는데 마침 취침 전투에서 휴식 중인 아드님이 물 잡수시러 건너오셔 정수기 앞에 서 계신다.
 '아드님, 지금 잠깐 등산 좀 하고 와야겠는데? 떼 한 번만 날라 놓고 오자!'
 "저, 친구 만나러 나가야 하는데요..."
 '...그래? 그러면 할 수 없지'

 '내일(12) 아침 오르락내리락 떼 날라가며 보식하기엔 힘든 상황이고, 어찌 되었든 죽어도 오늘(11) 다 올려는 놓아야 하는데...'
 궁리 끝에 상포상 아주머니께 지게와 여분의 마대 하나를 더 빌렸다.
 다섯 장씩 묶음인 열 단의 떼를 마대에 담으니 얼추 쌀 한 가마 무게는 더 되는 듯싶은데, 돈 자루라면 모를까, 한 번에 지고 올라가다가는 영영 못 내려 올듯싶다.
 여분으로 빌려 간 마대에 네 단을 덜어 놓고 나머지를 지고 아무 생각 없이 선영으로 올라가는데, 숨이야 헉헉거렸지만, 마지막 고 바위에서 한 번 멈췄다가 올라갔고. 두 번째는 지게 작대기를 옆구리에 끼고 쉼 없이 한 번에 올라갔으니 아직 여력의 힘은 가지고 사는가 보다.

 

 화초 좋아하시던 어머님 보시라고 두 해 동안 심어 놓은 영산홍.
 생육 조건이 좋지 않은 데다가 고라니 새끼가 뜯어 먹고 헤집어 놓고, 벌기는커녕 이만큼이라도 살아 꽃을 피우는 것이 대견하다.

 

오늘의 한 컷 _영산홍 ⓒ 詩人 성봉수

[영산홍 / 20210415] ▶본 이미지는 광고를 열람하는 방문자님의 후원으로 저작권 없이 무료 배포합니다◀ 詩人 성봉수 아룀

sbs210115.tistory.com

 '내일 산에 가서 먹게 김밥 좀 사다 놔요'
 "다섯 줄이면 되죠? 두 줄은 아침에 잡수시고 나머지는 산에서 잡수세요"
 다섯 시에 일어나 가려 했는데, 여섯 시 반이다.
 장비는 어제 떼 올려놓고 와서 다 챙겨 놓았고, 사다 놓았다는 김밥을 꺼내려 냉장고를 여니 딱 두 줄.
 ㅋㅋㅋ
 분식집이 닫아서 편의점에서 사다 놓았다더니, 계획했던 오천 원 예산에 맞췄겠지.
 제주 대신 아버님 어머님께 올릴 식모 커피 보온병으로 하나 타고, 나 먹을 물 한 병 챙기고.

 아홉 시 반을 넘어서며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비추기 시작한다.
 손을 서둘러 놀린 덕분에 가져간 떼는 다 보식했지만, 그만큼 더 있었으면 하는...
 보식을 마치고 윗대 조상님 산소부터 차례로 식모 커피를 올리고 내려와 부모님 영전에 김밥 한 줄과 식모 커피와 담배 한 대를 올리고 곁에 앉아 남은 한 줄을 먹기 시작하는데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때맞춰 일을 마무리한 것은 다행인데, 정오 지나까지는 머물다 오려니 했던 마음이 틀어지니 서운한 마음도...

 선영을 내려오며 냇물에 장비 닦고 일어서 한숨 돌리니, 그제야 보이는 사방의 도화. 그제야 들리는 바람 소리 새소리….

 

 

오늘의 한 컷 _복사꽃 ⓒ 詩人 성봉수

[복사꽃] ▶본 이미지는 광고를 열람하는 방문자님의 후원으로 저작권 없이 무료 배포합니다◀ 詩人 성봉수 아룀

sbs210115.tistory.com

 집으로 돌아와 씻고, 부모님께 올렸던 남은 김밥 한 줄로 점심을 먹고 다시 나가, 세 시에 잡힌 일정 마치고 네 시 조금 지나 돌아오는데 편의점 한편의 야외 테이블에 눈이 번쩍 뜨인다.
 '햐... 지금 여기서 술 먹으면 기똥차겠다'

 

 또 느낌대로다.
 빨간 이슬이 두 병을 왕 쥐포와 함께 빗방울에 말아먹었다.

 

 대낮부터 술타령이 오가는 이 눈에 거슬릴까, 밖에 생수를 한 병 놓고 술은 비닐봉지 안에 감추고서.
 (..나야 상관없는 일이지만, OO 아들, OO 아빠, 라는 무게를 모른 척 할 수 없으니, 세월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너야 그렇지만, 니 아들도 그렇게 하냐가 문제지!"
 지게 지고 올라가 선영 보식한 이야기를 들은 친구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건 몰라. 궁금하지도 않고, 알 수도 없고. 내 목숨 붙어 있으니,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나 살아 있는 동안 하는 거지….'


 

별이 빛나는 밤에, 지금.

 렌덤으로 틀어 놓은 음악에서 "시바의 여왕"이 흐른다.  갑자기, 그 밤을 지키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차인태, 박원웅, 고영수, 이종환, 김기덕, 이수만... 그리고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황인

sbs210115.tistory.com

 

 

 
 202104182138일
 며칠 안 들어왔다고 로그인 비밀번호가 생각 안나니 이거 원...

 

반응형

'낙서 > ┗(2007.07.03~2023.12.3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난스럽다.  (0) 2021.04.22
봄의 끝에서.  (0) 2021.04.21
쌀자루에 쌀, 똥자루에 똥.  (0) 2021.04.08
돼지처럼 먹다.  (0) 2021.04.07
벌써 오전이 다 갔다.  (0) 2021.04.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