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아드님과 함께 선영에 가기로 한 날.
9시를 넘겼어도 기척 없어 "오후에 가야 하나 어쩌나?" 자는 듯싶어 의사를 물을 겸 방문을 여니 없다.
<지금은 회의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
이제나저제나 전화 오기를 기다리다 12를 훌쩍 넘겨서야 닿은 기별.
"어제 오후 늦게 총무과에서 복직 연락이 와서요. 출근했습니다. 산에는 주말에 가시죠!"
'어제 제대한 놈이 바로 복직을 했어?'
한식이기도 하지만 내일 비 예보가 있으니 미룰 일이 아니다.
누더기로 갈아입고 연장 챙겨 시장 상엿집에서 잔디 사서 산으로.
맘 같아서는 두어 무더기 더 사 갔으면 좋으련만, 아무래도 노인네 체력에는 욕심 같아 도로 내려놓고.
산 아래 도착해 지난번과 같이 잔디 담긴 마대에 어깨끈 만들어 지고 터벅터벅...
바람을 많이 맞는 곳이라선지, 진달래 개나리는 활짝 피었는데 영산홍은 저번과 다름없이 망울인 채 멈춰 있다.
잔디 네 다발(스무 장) 지고 올라갔어야 표도 안 난다.
도배하면 헌 장판이 보이고 장판 갈면 낡은 세간살이가 눈에 들어오는 꼴이다.
여기 보식하면 저기가 보이고 저기 보식하면 또 저기가 보이고...
5년 된 영산홍도 4년 된 목련(남에 묘소 앞에는 활짝 번 모습을 보니 부아가 치민다)도 장 처음 그대로이니 문제는 흙인데... 전체를 다 새로 입히기 전에는 방법이 없을듯싶다.
보식한 떼를 삽으로 두드리는 동안, 엉덩이에 뿔 돋은 송아지 때 내 팔뚝의 담배빵을 보고 눈물 흘리시던 어머님을 떠올렸다.
"귀하게 얻은 자식이라 어디 몸 한 군데 흉 생길라 애지중지 정성을 다해 길렀더니... 그래, 너도 부모 되면 내 맘을 알리라"
'어머니 아버지, 소자 이만 하산합니다. 이제 추석 무렵에나 뵙겠네요. 기회 되면 또 다니러 오겠나이다. 어머니 아버지, 집 나간 두 딸년 돌부리에 자빠지지 않게 잘 좀 살펴주세요...'
똥구녕을 하늘로 향하고 넙죽 엎드려 절을 올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드님은 퇴근해 운동하고 계신다.
삼월이 언니가 쫓아오면 따발총을 쏜다.
"아니 세상에, 일 많고 힘들기로 소문난 곳인데! 그래서 서로 안 가려고 하고 못 버티면 그만두는 곳인데! 경험 있고 나이 좀 든 사람을 보내야지, 어린애가 뭘 안다고 이제 막 제대한 애를 그런 데다 발령을 냈데요!"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만 꿈먹 거리고 있다가,
'인사과장한테 전화라도 넣어 보시죠...'
"전화는 무슨! 정말 나쁜 놈들여!"
되돌아서며 혼자 중얼거렸다.
개똥밭에서 굴러보면 아빠가 꽁무니 쫓아다니며 "업그레드"를 왜 주문하는지 알게 되겠지….
202204063048수
졸리다. 핑핑 돈다.
인시 지나 몇 방울 떨어지더니 아무래도 비 오기는 그른듯싶네.
거리에 초파일 봉축 연등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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