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2007.07.03~2023.12.30)' 카테고리의 글 목록 (10 Page)
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낙서/┗(2007.07.03~2023.12.30)476

입춘. 마감일은 왔고 신작 시는 없고. 이것저것 긁어 붙여 보냈다. 이거 원, 곰국 우리는 것도 아니고... 고료 없는 청탁이니 특별히 양심에 거리낄 일은 아니다만, 옛날 그 노시인처럼 "고료 얼마입니까?"라고 큰소리칠 날이 있을까? 너무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 아마도 나 같은 허접한 시인이 발에 치이듯 많아서이겠지. 하긴, 글 실어줄 테니 책 사라는 장사꾼이 안 달려는 게 다행이다만. 여기저기 지명도 있는 문학지의 사화집 발간에도 고료 없이 발간비 보태라면 코웃음 치며 눈도 안 주던 내가, 지역 문학단체에 창립부터 지금까지 서너 해 내 몫은 했으니 이젠 고료 없이는 글 싣지 않아야겠다. 죽어도 고지. 나 같이 자존심 있는 놈이 늘어나야 대접이 바뀌지. 이러니 이류지만. 긁어다 붙이는 일에.. 2022. 2. 4.
얼굴. ...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무지개 따라 올라갔던 오색 빛 하늘 아래 구름 속에 나비처럼 날으던 지난날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 202202022822수 바람 맵던 날 윤은선/얼굴 부모님 묘소 앞 영산홍의 사마귀 알집 2022. 2. 3.
와르르르. 허 참! 아나운서 허참님이 오늘 운명하셨다는데, 정초부터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부음. 왜 꼭 이 무렵이면 운명하시는 분이 많을까? 그래서 예전엔 해 넘기기 전에 묵은세배 드리러 다녔는지 모르겠고. 부모님 공덕 뜯어 먹고 사는 놈. 올해도 살아 흠모의 잔을 고였다. 줄 서서 새 돈으로 바꿔 몇 푼 안 되는 용채라도 드릴 수 있고, 꼬맹이들 줄 세워 천 원짜리 세뱃돈 나누어주던 그때가 좋은 때였네. 202202012957화설날 이제하-모란동백 이제하선생님은건강하신가?그러고보니안부도못여쭸네.하긴,올핸누구건답신만했으니... 떨어진댐배사다놓고잘까말까?대문나서기귀찮은데... 2022. 2. 2.
좌우로 정렬. 비몽사몽간에 갑자기 나선 찻집. 사인 사색으로 주문한 차. 그 빛깔과 조합이 보기 좋아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좋다, 그래 이게 민주주의지!' 이런저런 담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들고 온 선물 상자를 연다. 그러고는 차지하고 있는 자리마다 시선을 통일시켜 정렬한다. -그러면서 최 선생님이 번뜩 생각났다. ㅎㅎ '한 곳을 통일되게 바라보는 것. 그래, 이게 효용이고 합리적이지!' 캔의 크기가 중간쯤 되려나? 두 끼 먹기는 모자라고 한 끼로는 넘치는 양일듯싶다. 편리함을 쫓아, 원터치로 오픈하는 용기로 거의 100% 생산되는 요즘 캔. "서걱, 서걱, " 어린 내가 건네받은 오프너로 용기를 찢어 나가는 그 사소한 몸짓에서 사내라는 정체성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망치와 주걱을 놓은 손에 .. 2022. 1. 31.
당신의 하늘 아래에서 갑자기 기름장 찍은 똥집이 먹고 싶다. 이 도시에 포장마차라는 게 없어진 게 오래이니 쓰레빠 끌고 슬렁슬렁 나설 일 없고 배달할 만한 업장 또한 문 닫을 시간이 지난 지 한참이다. 하지만 지난 장 보며 사다 놓은 양파도 있고, 삼월이 언니가 어디서 얻어다 마당 의자에 봉지째 던져 놓고 꾸들꾸들 말라가는 청양고추를 본 기억도 있으니, 똥집만 구하면 된다. ​ ​편의점에서 주인공을 본 기억을 잡고, 길 건너 동네에서 시작해 역 앞으로 한 바퀴를 돌았지만 결국 손에 들린 건 집 앞 편의점에서 도로 내려놓은 꼬마족발. '어항 불을 켜고 천장 형광등을 끌까?' 아주 잠깐 고민했지만, 하루 한 끼로 줄인 사료를 생각하니 그들의 일상을 깨는 게 못 할 짓이다. 오롯이 내게 닿은 인연의 물소리와 그 바닥에 닿지 못하는.. 2022. 1. 30.
그와 나의 하늘. 달란트 높은 시인께서 이류 무명 시인에게 보내주신 시집. 비용은 더 들어도 편리함을 따라 접착제가 붙은 봉투를 쓰는 분들도 더러 계시고, 대개는 테이프로 마감하거나 어떤 이는 지철기로 물려 보내오기도 하는데... 봉함에 사용한 마른 풀 자국 앞에서 나도 모르게 맘이 따뜻하다. 들뜬 곳 한구석 없이 꼼꼼하게 달라 붙인 풀질. 사람에게 느끼는 좋은 냄새, 살아온 흔적이 별거며, 아우라가 따로 있던가... 맘이 이러니 봉투인들 함부로 뜯을 일이던가? 내가 이래서 봉투 칼 하나 장만한다고 마음먹은 것이 십수 년은 지난듯싶고, 꾀를 내 '대나무라도 깎아 만들어야겠다'라고 생각한 것도 몇 년은 지난듯싶다. 책장을 넘기며 맞이한 서문 '자서' "... 울타리가 없는 자유를 잊은 적은 없다." 가두거나 나눌 것 없는 .. 2022. 1. 29.
도대체 왜 이러는지.... 개밥그릇에 내온 콩나물 김칫국(이 계절엔 언제나 의심 없는 맛)을 떠먹어가며 술밥 먹고 커피 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하고 돌아와 옷 갈아입다 눈에 띈 그 자리에 그냥 놓인 어머님 바르시던 호랭이 고약. 아무 생각 없이 관자놀이에 찍어 바르고 거실로 나와 앉았는데, 불면증에 걸린 분들이 아로마 요법으로 도움받는다더니 호랑이 고약도 그쯤이었나? 나도 모르게 스르르.... 꿈인지 생시인지 들려오는, "화재 발생! 화재 발생!" 눈을 번쩍 뜨니 새로 두시. 그제야, '아차!' 후다닥 붴 문을 여니 연기가 자욱하다. 한 솥 끓여 놓은 시금치 감잣국. 한 겨울인 데다가 며칠 안 되었는데 그제 저녁 먹으려니 시큼하다. 양이 웬만해야 미련 없이 버리지... 못 먹을 만큼 상했는지 확인할 겸 데워서 한 끼 먹고, 어제 또 .. 2022. 1. 26.
그래, 그래, 통상적으로 검사량이 적어 확진자도 적었던 휴일. 이번 주엔 오히려 늘어 8,000명대에 육박한다. 코로나 오미크론 변이주의 확산이 본격화되었고, 확진자는 무조건 자가치료를 원칙으로 하고 검사 방법도 자가검사를 권장한다. 결론을 도출한 합당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미리 상비약 준비"를 해 두라거나 "식구 수대로 자가진단키트"를 사다 놓으라는 보도도 나온다. 이쯤이니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게 내 목전에 닿은 일 같다. 잠깐 생각하니, 이 상태로 여차하면 목욕도 못 하고 조상님 차례 모시게 생겼다. 2주 전에 물 구경했으니 이 차 저 차 목욕부터 해 놓아야겠다. 목욕을 마치고 평상에 앉아 양말을 신는데, 바닥이 닳아 스타킹이다. 내가 아무리 신사가 아니어도, 이런 양말을 왜 버리지 못하고 구질구질하게 사는 .. 2022. 1. 24.
삼식이 뒷담화. 장구루마를 끌고 집을 나섰는데 로터리쯤에 닿아도 거리가 휑하다. 이런 삼식이가 있나! 어제 장 보려다가 장날을 맞춰 오늘 나섰더니 어제가 장이다. ㅉㅉㅉ 근처 아파트 뒷골목에 세워 놓은 차. 연식이 오래되다 보니 날이 추워지면 배터리가 방전된다. 외출 후 돌아오는 길에 주기적으로 시동을 걸고 앉았다 오곤 했는데, 이쯤에 또 한 번 걸어줄 때가 되었는데... 겸사겸사 차를 끌고 나서려다가 장날을 생각하고 그냥 구루마 끌고 나왔는데 삼식이 노릇 제대로 했다. 장 보고 돌아오는데 갑자기 제육볶음이 먹고 싶어졌다. 내 몸이 단백질을 원하나 보다. 방앗간에 들어 자리 잡으니 셔언한 사이다가 먹고 싶다. 제육볶음이 나오기 전 두꺼비 한 마리를 먼저 잡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이다와 함께 먹으니 속이 훑인다. .. 2022. 1. 22.
리셋, 잠이 보약여. 아침 여섯 시 반을 넘겨 잠자리에 들었다 눈 뜨니 오후 세 시가 찍어 달리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틀 만에 청한 잠, 꿈 하나 없이 죽은 몸과 다를 것 없었다. 눈을 뜨자마자 커피가 생각나는 것을 보니 오랜만에 제대로 된 리셋이다. 커피를 탄다. 내린 커피는 아니어도 향이 좋다. 서재에 앉아 담배와 함께 천천히 먹었다. 어항 식구들 먹이 챙겨주고 마당으로 나섰다. 또 안으로 들였는지 기척 없는 삼월이. 오래된 집 마당의 정적 위에 눈이 얹히고 있다. 대문 앞까지 휘이 돌아보고 다시 서재로 돌아와 음악을 들으며 모처럼 폰을 잡고 꼼지락거렸다. 채팅창 맨 아래에서 발견한 작년 9월에 전송된 카톡. 유명 시형께서 신간을 보내주신다는데, 도착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렇지 않아도, "너는 형이 톡을 보내면 연.. 2022. 1. 20.
폭신한 그 무엇. ★~詩와 音樂~★ [ 시집 『너의 끈』] 안갯속에서 / 성봉수 안갯속에서 / 성봉수 안갯속에 서 있는 나를 유리벽 안의 그녀가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애당초 나란 존재는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 초점을 맞출 수 없는 희미한 피사체 같은 sbs150127.tistory.com 책 뭉치를 옆구리에 끼고 담배를 물고 그때 그 길을 천천히 걸어 돌아왔다. 기껏해야 계란찜이었지만, 돌아와 TV 앞에 앉았다가 폭신한 그 뭔가가 갑자기 생각난 이유는 모를 일이다. 202201172945월 쟈니 리-바보 사랑 세종시협총회에다녀오며 2022. 1. 18.
싸고 풀고... 예정하고 맘이 동했을 때는 배앓이가 막아섰고. 미루어 닿은 날은 때맞춘 삼월이 언니와 셋째를 보며 어른 한 명은 집을 지켜야 하니 주저앉았고. 오늘은 영 맘이 개운치 않아 예약 표를 취소하고 꾸리던 가방을 풀었다. 부르르 요동치던 맘은 가라앉았고 그렇다고 십여 년 전 바랑을 꾸리던 그 새벽처럼 모든 게 허물어진 것도 아니고. 이 개운치 않은 맘으로 숙제하듯 새벽길 나서는 것은 영 아닌 것 같은 마음에... 있는 건 시간밖에 없으니 다음 주가 되었든 달 바뀌고 설 전이든, 그 이후에든 다시 생각해보자. 어항에 달아 놓은 자동 급식기는 일단 다시 떼어 놓아야겠다. ★~詩와 音樂~★ [시집 『바람 그리기』] 탁발 / 성봉수 탁발 / 성봉수 부황든 오늘에 지난 울력은 부질없느니 동안거의 수행이란 거짓이라 했다 .. 2022. 1. 17.
일단 멈춤. 밤마다 꼼지락꼼지락 실어나른 것이, 모래로 따지면 얼추 한 리어카는 될듯싶다. 그러니 일단 이쯤에서 스톱. 봉수야, 날 추운데 밤마다 고생했다. 202201133121목 날 밝았다. 행복한 하루 되시고. 아직은 밤이 기네…. ★~詩와 音樂~★ [ 시집 『너의 끈』] 얼굴 / 성봉수 얼굴 / 성봉수 동심원의 물결이 일어 햇살을 깨우고 새들을 모으고 바람을 불러 신록을 꿈꾸게 하였더니 그때 던져진 돌맹이 하나 그리움의 기억 끝에 대롱이는 쓸쓸한 추가 되었다 sbs150127.tistory.com 2022. 1. 14.
네 뜻대로. 사랑하는 둘째야 생일 축하한다 건강하거라 20220112수陰1210 어제 나서기로 했던 길. 속이 신통치 않아 오늘 새벽으로 미뤘더니 밤새 화장실을 세 번이나 다녀왔네. 꼴이 오늘도 길 떠나긴 그른 것 같은데, 움직이지 말고 처박혀 있으라는 건지... 맘 같지 않네. 2022. 1. 12.
콸콸콸 코로나 건 뭐시건, 물 구경한 게 언제인지 몸에서 진동하는 썩은 내를 견딜 수 없다. 모처럼 찾은 대중탕. 샤워하고 탕 속에 잠시 앉았다가 때수건을 잡았는데, 슬겅슬겅 밀어도 때가 콸콸콸~! 물값 제대로 뽑고 나왔다. 그나저나, 탕 속에 앉았던 어르신. 단전호흡을 하시는 건지 어디가 불편하신 건지, 30초마다 지르시는 괴성 "흐흠" 아직도 그 소리가 들리는듯한데, 여탕에도 그런 분이 계신가? 목욕탕에서 나와 동동거리며 들린 세 군데의 병원. 약국까지 마무리하니 어둑해지기 시작한다. 특별히 술 생각이 난 건 아니었는데, 몸이 깨깟해졌으니 내장도 소독해야 할 것 같은 생각. 따땃한 두부김치를 잡고 앉아 허겁지겁 빈 속을 채웠다. 소주와 맥주 한 병씩. 점점 줄어드는 술양이 점점 늙어가는 내 시를 보는듯해 씁.. 2022. 1. 11.
기도하듯 살어라 이 거리를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내 젊은 날. 지금은 연탄재가 실린 구루마를 끌며 섰다. 내 손에 쥔 오늘이란 별수 없이, 이 밤거리의 휘청거리던 내 젊었던 어제가 닿은 곳. 널랑은 혼자 술 먹지 말아라 널랑은 혼자 휘청거리지 말어라 널랑은 갈 곳 없이 길을 나서 휘청이지 말어라 이제 와 뒤돌아보니 그 소중하고 아름답던 때. 널랑은 맨정신으로 또박또박 당당하게 걸어라 되돌아갈 수 없는 길, 널랑은 한발 한발 기도하듯 살어라 길고양이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거리. 굴뚝도 아궁이도 없는 이 겨울의 회색 도시 어디, 온기를 찾아 웅크리고 있을까... ★~ 詩와 音樂 ~★ [너의 끈 ] 잠 못 드는 밤 / 성봉수 잠 못 드는 밤 / 성봉수 꿈 거리도 없어 빈 맘으로 눈감은 나를 작신작신 두들겨 패야 합니까 내 .. 2022. 1. 8.
그지 봉수. 거울 앞에 선 모습이 천상 그지다. 내 자칭 별호가 [전국 노숙인연합회 박스분과 oo시협회장]이지만 참 험하다. 생긴 게 싱거워 기르기 시작한 콧셤. 젊어서는 그럭저럭 봐줄 만했더라도 이젠 흰 털이 더 많아 보이는 데다가 이틀을 다듬지 않았더니 추접스럽다. 밀어버려야 하나 어쩌나... 거울 앞에서 오래전 썼던 「면도」라는 시구가 떠올랐다. 분명 어디엔가 발표하고 시화전 패널로도 걸렸던 건데, 세 권의 시집 어디에도 없다. 이 방에는 없고, 혹 에는 있을까 싶어 살펴봤지만 없다. 면도를 할걸 그랬어요 이제서야 뻗대 나오는 서너 가닥의 (어쩌구)뿐인 줄 알았더라면 애당초 건방진 오기의 손길로라도 면도를 했어야 했나봐요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대충 이랬던 거 같은데, 20대 그 팔팔하던 날 왜 이런 시를 썼을까.. 2022. 1. 7.
스무디 먹는 침팬지 임인년 첫 술자리. 언제나처럼 1차와 2차를 뭉뚱그린 "말어"다. 그리고 변함없이 찻집에서의 마무리. '무얼 먹을까?'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거 코코아 들어간 거 맞죠? 위에는 생크림인가요? 요거트 인가요?' "녜. 코코아 들어가고요, 생크림은 아니고…. (이것저것)..." 계산대 옆의 그림판도 그럴듯하고 술도 먹었겠다, 달곰한 코코아와 부드러운 요거트의 조합이려니 생각하고 주문했더니... 염병, 에스프레소에 카카오 스무디를 얹은 아포가토의 장난질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후루룩 빨아들이기엔 근력이 부쳐 이건 당최 먹을 수가 없다. 궁리 끝에 빨대로 팍팍 쑤시고 휘저어 커피와 스무디를 대충 섞어 찍어 먹는데, 앞에 앉은 친구나 나나 그 모습이 천상, 동물에 왕국에 나왔던 침팬지가 나뭇가지로 개미 핥아먹.. 2022. 1. 5.
범띠 할머니 갑자기 거세진 바람종 소리. '눈이라도 오시나...' 오늘부터 깨작거리기로 계획한 일을 뒤로 미룰 만큼 만사 귀찮다. 왜 이렇게 추운지 몸이 오그라들어 꼼짝하기 싫다. 자는 것도 깨 있는 것 아니고, 누운 것도 앉은 것도 아닌 엉거주춤 벽에 기대어 가끔 담배를 뻑뻑거리며 이불을 어중간하게 뒤집어쓰고 흡사 겨울잠에 든 짐승처럼 숨만 쉬며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똑같은 뉴스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거세진 바람종 소리에 눈이라도 내리는지 부엌문을 밀치고 나섰다. 부엌문 열리는 소리에 삼월이가 쪼르르 달려와 바깥채 문 앞에 앞서 자리 잡고 앓는 소리를 내며 통사정이다. '애 계속 이러면 밖에서 못살아. 어쩌려고 자꾸 들여...' 바깥채 식탁 아래에 쭈그리고 앉아(아예, 자리를 깔아 놨다) 눈치 보는 것을 요 며칠.. 2022. 1. 4.
壬寅年 첫날 뒷방 늙은이에게 해가 바뀌는 것이 뭐 대단한 일이겠냐만, 등 벅벅 긁으며 맨짬으로 맞이하기엔 뭔가 서운하다. 치킨에 맥주나 한잔해야겠다고 먹은 마음이 갑자기 돌변해 회가 먹고 싶다. 회 먹은 것이 언제였던지... 가끔 시장 생선전 앞을 지날 때 포 떠 놓은 것을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몇 첨 되지도 않는 것을 혼자 먹겠다고 들고 오기엔 가격 대비 효용이 없어 되돌아선 것이 몇 번. 그 돈 아껴서 부자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아낀 돈을 가치 있는 곳에 쓰는 것도 아니면서 그것 하나 아무 생각 없이 입에 넣지 못하니 이놈의 주변머리가 그렇다. 회를 주문하고 치킨도 주문하고 길 건너 편의점에서 술도 사 왔다. 이전부터 있었던 술이라는데, 이름이 맘에 들어 손에 쥐었던 빨간 이슬이를 내려놓고 를.. 2022. 1. 2.
할머니 기일. 할머님 기일. 철상하고 음복 잔을 잡고 상석에 앉았는데, 지짐이를 잘 고인 것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이거 누가 고였어? 어쩐 일로 잘 고였네?' "예? 잘 고였다고요? 높게 쌓는다고 엄마한테 혼났는데요?" 으아하다는듯 되돌아온 셋째의 대답. '이런 게 고인다는 겨. 제사나 잔칫상에는 이렇게 높고 푸짐하게 쌓아 올리는 겨' 색색으로 다식 찍어 옷감 짜듯 켜켜이 쌓고, 은행도, 잣도, 대추도 기예처럼 고이고, 오징어나 어포로 가지가지 꽃도 만들어 올리고... 동네마다 그런 좋은 솜씨로 과방 보러 불려 다니던 아줌마들이 한둘은 꼭 계셨는데... 이젠, "바로 누진다"며 언제부터인지 김도 안 올리니. 불과 얼마 전의 일상 같던 이야기들이 전설 같은 기억이 되어버렸다. 내게 늘, "봉수야, 욕심 많은 사람이 .. 2021. 12. 31.
무덤의 핑계. 마이마이가 CD플레이어에 자리를 내주었을 때도, 또 그 자리가 MP3 플레이어와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에 차례로 밀려났을 때도. 필름 카메라가 디지털카메라에 밀려나고 플로피 디스크가 USB 메모리로 사라졌을 때도. 기술의 발전에 따른 순리적인 변화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내게 닿는 충격파가 당황스럽도록 크다. 물론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경험하던 그 상황이 미래 언제의 시간에는 틀림없이 구현되리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당혹스럽다. 그것은 그런 상황을 맞을 만큼 준비되지 못한 내 탓이거나, 준비할 틈도 없이 급작스레 닥친 상황일 텐데 이 급작스러운 변화의 충격이 얼마나 크던지 가슴이 다 벌렁거릴 지경이다. 5G로 상징되는 사물인터넷이 2019년에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이미 상용화.. 2021. 12. 30.
잠잘 수 있는 사람. 그가 짐작하는 몇 가지 기억 중 하나를 떠올리시며 어느 해인가 어머님께서는 몹시 분해하셨는데, 어제저녁 무렵 압력솥에 딸랑이가 울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밀린 설거지를 하고 섰던 그에게 예고도 없이 그런 분함이 몰려들었던 거다. 그 분함의 정체는 지난 시간에 대한 기억의 단편들이 열을 지어 떠오르다가, 열은 어느 순간 엉망진창으로 베베 꼬여 뒤죽박죽 되어버렸는데 그것은 그가 걸어온 여태의 진심이 부정의 매듭으로 엮여져버린 것이었다.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심은 왜곡되고 묵언의 신뢰가 왜곡의 칼날에 사정없이 잘려 나간 오늘 앞에 서서 분해한 것이었다. 그를 더 분하게 한 것은 그 분함에 대해 어떤 항변도 통하지 않도록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이 그만의 몫으로 남겨져 있고, 그의 부정할 수 없는 지난 시간에 .. 2021. 12. 28.
2021 크리스마스. 상황 보아가며 천천히 접종하려 했던 코로나 예방접종 부스터 샷. 이스라엘에서는 오미클론의 확산에 맞춰 부스터 샷에 더해 4차 접종을 위한 표본 실험에 들어간다는 보도.-오늘 자 해당 소식에는 효과와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아 고민 중이라고는 하다만... 그러니 어영부영 날을 미룰 것이 아니라 월요일로 접종 예약. 그런데 오야께서 잡부 일정을 잡아놨단다. '어떡하지요? 그날 코로나 접종하는데...' 24일. 한 시간 자고 나간 잡부. 현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오야께서 말씀하신다. "월요일에 하기로 한 시공 내일 하자고. 노가다는 크리스마스에도 다 일 하니께!" 일요일은 몰라도 크리스마스에 노가다가 얼마나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실제, 소음 민원 때문에 요즘은 그냥 휴일에도 웬만하면 공사를 하지 않고), 현장이.. 2021. 12. 27.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