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2007.07.03~2023.12.30)' 카테고리의 글 목록 (3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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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476

꿀 발라 놓은 남자. 며칠 전부터 벼르고 있던 빨래, 외출에서 돌아오며 작정했다. 샘에서 빨기엔 아직 춥고, 샘 다라에 통째로 언 얼음덩어리를 뒤집어 쏟고 바깥채 욕실로 가지고 들어갔다. 가루비누 풀어 빨래 담가 대충 주물러 놓고 건너와, 라면 하나 삶아 먹고 장화 챙겨 신고 시작이다. 속옷과 양말만 빠는데도 큰 다라로 가득이다. 꼬박 두 시간 걸렸다. 마지막 헹굼 물을 받으며 문득 떠오른 생각. "아저씨... 저는 아버지한테 한 번도 그런 말 들어본 적 없었는데... 물이 얼마나 들어간다고..." 퇴근(넥꾸다이 매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한 나에게, 새댁 삼월이 언니가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고 푸념한다. 낮에 샘에서 빨래하는데, 수돗물을 틀어 놓고 빨래한다고 시아버지께 꾸지람을 들었단다. 시간이 한참 한참 흐르고 시아버님께서.. 2023. 2. 16.
출렁다리를 건너. 꺼 놓은 컴 켜러 서재까지 들어가긴 귀찮고, 저녁 먹은 설거지하며 듣는다고 폰에서 음악 랜덤 재생시켜 놓고 뉴스 보며 뭉그적거리다가 그 자리서 폭 쓰러져 잠들었다. 당겼던 활시위를 놓으니 그런 모양이다. 오른쪽에서는 YTN이 떠들고 왼쪽 귀에서는 음악이 떠들고... 나는 마치 누가 잘하는지 살피는 심판자라도 된 듯, 나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시간의 파동에 양쪽 귀를 번갈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새로 네시가 넘을 때까지 꿈과 생시의 벼랑 끝에 매달린 출렁다리 위에 서 있었다. 들리는 음악마다 얼마나 달콤하던지, 아무래도 왼쪽 귀를 조금 더 열고 생시의 벼랑 쪽에 더 가깝게 매달려있었나 보다. 언제 담겼는지 기억 없는 어머님의 목소리도 들리고, 귀갓길 흐느적거리는 내 휘파람 소리도 들리고, 변도변의 클래.. 2023. 2. 15.
나를 믿지 말아요. 오밤중에 쓰레빠 끌고 시내 한 바쿠 휘이~돌고 편의점에서 라면과 담배 사서 나오는데 그냥 나오기 허전하다. 챙겨 간 쓰레기봉투에 보름달 하나 보태서 돌아섰는데... 로터리 지나며 부욱 뜯어 우걱우걱 먹는데, 뒤질 뻔했다. 이놈의 빵이 숨구멍으로 들어간 건지 어디 그 근처에서 뭉친 건지 갑자기 울대가 심각하게 아프다. 이거 원 물도 없고….'성우 누가 떡 먹다가 죽었다더니, 이러다 뒤져도 그지같이 뒤지는 거 아녀?'란 생각이 번뜩 드는데 눈물이 쏙 빠지도록 너무 아프다. 일단, 밀어내기라도 할 생각으로 나머지 빵을 아프건 말건 우걱우걱 밀어 넣으며 급하게 집으로 와 물을 넘기니 그제야 가라앉는다. 허, 참... 내가 나를 못 믿을 지경에 닿았구나... 의자 등받이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 숙제 다 해서 보냈다.. 2023. 2. 14.
어쩔 수 없는... 소금 소태 처치 곤란 김장을 국이나 끓이면 손이 갈까, 저녁 지을 쌀 불리는 동안, 며루치 똥을 가르고 있는데... 랜덤 재생시켜 놓은 서재 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강촌사람들ver-바위섬 포말로 부서져 간 시간, 나는 또 기억의 바닷가에 서서 그리움으로 떠도는 구름을 마주하는데.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던가. 불쑥불쑥 오롯이 무너져 내리는 허기, 나로부터의 이 지독한 무너짐... 202302123032일 2023. 2. 13.
안개 내리는 포도에서. 오랜 친구들과의 계묘년 첫 모임. "불쌍하다"며 얼마나 걷어 먹이는지, 배가 보름달만큼 부풀었다. 내일 아점까지는 약속이 있으니, 아가리 벌린 밥통 채울 걱정 없고... 예년 같으면 몰고 가거나 끌려가 또 한 파대기 술판 벌이고 눈곱 매달고 돌아왔을 텐데, 몰아 보내고 혼자 횡단 보도를 건넜다. 건너에 서서, 안개가 내려앉는 포도 저편으로 멀어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나를 보듯 한동안 바라봤다. '오늘까지 어찌들 왔니? 그 길, 별거 아니었는데...' 202302112431토 Claude_Ciari - La_playa-mix 20230211토DHC 귀갓길. 전기세 폭탄. 2023. 2. 12.
어르신 유감. 비행기도 엄청 떠 있다. 도착 시간 대충 계산하니 저 비행기같은데... 지금쯤 인도네시아 지나 기니 섬 근처 접어들었을 거 같네. 추운 곳으로 가는 게 아니라 걱정은 덜 하다만, 참... 공항버스 기다리며 담배 먹고 돌아서는데 뒤통수에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 "어르신!" '???' "어르신, 죄송하지만 불 좀..." 하...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더니, 이순의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맞춰 난생처음 어르신 소리를 들었다. 내 뒷모습이 그렇게 궁색했나? 대가리를 짧게 깎던지... 서글프도다... ★~詩와 音樂~★ [시집 『바람 그리기』] 호적번호 00994□□□9 / 성봉수 호적번호 00994□□□9 / 성봉수 기니피크˚가 되겠다는 동의서를 쓰고 받은 병록번호 00994□□□9 저승꽃이 피고 새우등이 될 때.. 2023. 2. 11.
봄비를 기다리는 아침. 저녁 먹고 한 시간 깜빡 졸았다 깼는데 몸이 갸붓했습니다. 보통은 졸다 깨면 머리가 아프기 마련인데, 아마 모처럼 단잠이었나 봅니다. 먹은 설거지 해치우고 커피 타 서재에 들어와, 밤새 청탁받은 글 붙들고 늘어져 조금 전 탈고해 보냈습니다. 시원합니다. 기지개 한번 켜고 커피 다시 타서 들어왔습니다. 오면서 오강에 쉬 한 번 했습니다. 시원합니다. 어제는 우체국도 못 갔고, 빨래도 못 했고요 꼼지락 거리다 하루 다 갔습니다. 오후에 지난 일요일 촬영한 가족사진을 찾아왔습니다. 당연하게 배경처리할 걸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냥 찍은 그대로 실사출력했습니다. 커다란 놈을 맨 앞에 구겨 앉혀 어정쩡한 구도나, 조화 화분도 대칭이 안 맞고... 진쫘! 시외버스 차창 밖으로 얹듯 스쳐 가는, 시골 사진관에서 찍은.. 2023. 2. 9.
품위 있게...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작정하고 고꾸라졌다가 새로 네 시 반에 눈 떠서 사과 반 쪽 깎아 먹고 하루를 시작. 저녁이 다 되어 담배와 식모커피 사러 나선 김에 무 하나 사다가 나박 썰어 소금간 국물 만들어 익으라고 장판 위에 올려놓고-설에 삼월이 언니께서 정성을 다하여 만들어 들이민 배추 물김치가 저 혼자 기똥차게 익었는데, 무만 썰어 보태면 구경 못 한 동치미 빈자리를 거뜬하게 대신할듯싶어... 그리고 컴 열고 앉아 담배 한 갑 조지며 밤을 났다. 음악에 생각이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늙긴 늙은 모양이다. 음악을 끄고 간만에 라디오 앱을 열어 놓고 함께했다. 숙제는 90% 했으니, 마감일 전에 마무리하면 될 일이고. 자료 찾느라 연 토정비결. "어려운 일은 소인들의 다툼에서 생기는 법입니다... 2023. 2. 8.
일단... 왔다리갔다리... 의도치 않게 선택하게 된 소모 인간의 하루. 그 하루가 다 갔다. 약도 하나 안 먹었고, 붕어들 밥도 안 준 하루. 어쨌건 지금은 일단 눕고 봐야겠다. 이를 박박 닦았어도, 소모 인간으로 구한 부정하고자 했던 답. 이 지지근한 불쾌함은 무엔가? 2023. 2. 6.
내 자리. 은사님은 그대로인데, 제자가 파싹 삭았다. "제가 살짝 들었는데, 이 언니 00에서 잘나갑니다. 이 언니, 한국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혼자 힘으로 돈 벌어 제 앞가림하기도 벅찰 텐데, 생각도 못 했던 엄마 아빠 용채를 건네는 둘째 옆에서 셋째가 넣는 추임새. 모두 제 있는 자리에서 제 몫으로 잘살고 있으니, 나만 일 저지르지 않고 나잇값 하며 순하게 살면 될 일이네. 20230205정월대보름3208 2023. 2. 6.
암호. 묵은 우편물들 정리하다가 발견한 부적. 해독 불가의 금석문처럼, 떨어져 나간 경면주사 가루가 내 언제의 형편 위에 그려졌는지 기억 없다. 우선 떠오른 것은, "술 먹지 말라"고. 아니면, "술 먹어도 건강 해치지 말라"고. 아니면, "사네 마네 하는 이 염병할 것들, 지발 금슬 좀 좋아지라"고. 어쩌면, "성공하라"고. 그것도 아니면, 가슴에 묻고 당신께서 끝내 안고 가신 "점지와 맞바꾸기로 부처님이나 삼신할미님과 하신 약속, 걷어달라"고. 어머님의 눈물로 빌었을 이것. 있을 곳이 아닌 곳에 있는 것을 보니 분명 어디선가 꺼내 버리지 못하고 챙겨두었을텐데... '다시 접어 수첩 속에 넣어둘까?' 머뭇거리다가, '아서라, 그곳에서도 끈 못 놓으시고 속썩으실라...' 담담하게 소지했다. *냄비도 닦아 놓았고.. 2023. 2. 3.
번아웃(burnout) 혹, 모로 돌아누울까 잠도 깊게 못 들 정도로, 얼마부터 일상을 정지할 정도로 부담되는 어깨 통증. '파스를 붙일까? 백 번은 생각하고, 백 번을 그냥 있는 아직은 배부른 통증이거나 무기력. 그래도 어쩌나!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지 않던가! 아프거나 말거나 술청 받고 나가 남의 살로 술밥 배부르게 먹고, 커피로 입가심하고 돌아왔다. 첫 끼이건 뭐시건, 총량으로 따지자면 모자랄 것 없는 날이다. 느낌이 그런 건지, 내가 뱉는 말이 어눌해서 찜찜했다.-밤새 풍 맞는 거 아녀? 삼월이 언니께서 퇴근하시며 건네준 우편물. 전화를 받았고, 메일도 받았는데 따로 청탁서를 보내왔다. 예전에는 도착하는 청탁서를 버리지 않고 다 모아뒀는데, 지금은 어디 어떻게 쑤셔박혀 있는지도 모르겠고... 우편으로 받는 청.. 2023. 1. 31.
선물의 기억 서울 구경 갔던 삼월이 언니. 저녁 언제쯤 돌아왔는지, 슬그머니 건너와 선물을 놓고 간다. 그때, 퇴근하신 아버지 밥상머리에서 어린 내가 얹듯 들은 아버지의 단호함. "안돼!" 어머니는 아버지의 단호함을 생경하게 무시하고 내장산 단풍 구경 관광버스에 오르셨고, 다음날 어머니의 부재를 안 나는 어머니 귀가 전까지의 공백을 "역정 내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며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돌아오신 어머님이 차려입고 나간 한복을 채 벗기 전 내게 건네신 선물 "독서대". 독서대를 건네고 아버지 선물로 챙겨 오신 "혁대"를 내려놓으시며 한숨처럼 읊조리신 "남들은 이거저거 턱, 턱, 많이도 사더만... 돈이 있어야 뭐를 사지..." 순간, 부재의 공포감은 잊히고 어린 내 머리에 몰려들던 '우리 엄마 불쌍하다'.. 2023. 1. 31.
깨진 바가지. 요즘 아무래도 담배를 너무 많이 먹는다. 이 밤에만 한 갑을 다 태웠다. 그렇게 숨 쉬듯 입에 문 담배처럼 내 방을 찾는 이가 많았던 어제. '누가, 뭐가 그리 궁금했을까?' 검색창을 열고 모처럼 내 흔적을 찾는데. 하... 60대에 내 프로필이 옮겨져 있다. 여지없는 일이지만 슬프다. 개인적인 연으로 꼴 보기 싫은 작자 몇 명과 이젠 한 울타리에 담겼다. 문제는, 면면이 지명도 있는 이 들이 많은 방이니 그렇지 않아도 삼류가 더 존재감 없어지게 생겼다. 그러면서 퍼뜩, 오늘 얼렁뚱땅 의도 없이 기운 시를 생각한다. '나잇값을 하고 있는 건지...' 저녁 무렵, 소피 보러 바깥채 건너가는데 거실 깜깜한 냉골에서 삼월이가 눈을 떼꾼하게 뜨고 엉금엉금 기어 나온다. '이 ㄴ 아! 이 깜깜한 냉골에서 뭐하는 .. 2023. 1. 29.
잡부의 아침. 잡부. 자재 챙겨 현장 가는 아침. 들판에 쌓인 눈. 앞뒤 겨눌 일 없는 그대로의 만족스러운 감상. 잠깐이었어도, 지금의 내게는 과분한 보이는 데로만 느낄 수 있었던 무념의 시간... 숙취가 있을 만큼 먹지 않았는데, 오전 내 속이 불뚝불뚝 울렁거리며 동반하는 어지러움과 약간의 위통. 요즘 하루건너 한 번씩 지지근한 위통이 있기는 하지만 '약을 사 먹어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기분이 께름칙하고 불쾌했다. "삐거덕삐거덕" 고물이 고장 날 일밖엔 더 있겠냐만... 매트도 뜨겁게 하고 잘 잤는데, 담이 든 것인지 어쩐지... 굽혔다 펴기가 불편하도록 엉치가 뒤로 빠지며 허리가 안 좋았다. 그렇게, 허리쯤까지 진창에 빠져 있는 것 같은 몸으로 꼼지락거리는데 "거시기요!" 환청처럼 나를 부르는 목소리. 삐거.. 2023. 1. 28.
뿐이고. 내가 한 것이라고는 깨어있던 것. 깨어 있었을 뿐인데 머리가 무겁고 피곤하다. 지난밤엔 밤새 바람종이 울더니 오후 늦게 고양이처럼 눈이 나렸다. 오래된 마당에 솔찮히 쌓인 눈을 치우고, 집 앞 도로를 치우고, 성묘 다녀오며 집 앞 큰길가에 세워뒀던 차를 골목으로 옮겨 놓고, 담배 사들고 돌아와 설 선물 받은 것 정리해서 치우고, 산더미처럼 쌓인 해 넘긴 설거지를 하고, 찌든 내 나는 밥 한술 떠 저녁 먹고, 그리고 깨어 있었을 뿐인데... 마당이 훤한 것을 보니 눈이 또 쌓였나 보다. 설 연휴도 끝났고, 새해 첫 달도 다 지나갔다. 밤새 잠잠하던 바람종이 울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피곤하고, 줄이 끊긴 연은 실성한 사람 같이 제 멋대로 떠돌고 있다. ★~詩와 音樂~★ [시집 『바람 그리기』] 고독(苦獨).. 2023. 1. 25.
가치. ★~ 詩와 音樂 ~★[詩集 『바람 그리기』] 그런 날이 있어요 / 성봉수 그런 날이 있어요 / 성봉수 유난히 그런 날이 있어요 그래서 슬그머니 일상을 나서 홀로 술잔에 숨고 싶은 그런 날이 있어요 그런 유난스러운 밤이면 인적 끊긴 거리를 유령처럼 나서요 이런 유 sbs150127.tistory.com 모니터를 갈고 난 후 마우스가 안 먹힌다. 메모장에 잡문 하나 쓴 것 문서로 옮겨 놓고 탈고하려는데, 긁다가 끊기고 제멋대로 문장이 옮겨붙는다. '하... 이상타? 모니터가 터치패널도 아닌데...' 설정을 열고 별짓을 해도 소용없다. 중학교 졸업한 후로는 다섯 매짜리를 써 본 기억이 없으니, 짧게 쓰는 것도 고역인데 영 집중인 안 된다. 아침에 어찌어찌 싱거운 글 하나 보내놓고. 저녁에, 아들 방 컴에 기본.. 2023. 1. 18.
요지경 속. 멀미 같은 울렁거림과, 반쯤 담긴 풍선 안의 물처럼 꿀렁거리던 두통은 한 시간쯤 후에 진정되었는데, 그동안에 무엇이 나를 이 요지경 속으로 밀어 넣었는지 곰곰 생각하니 짚이는 것이 있다. 아침 댓바람에 밥상 차리며 확인한 국. 오징어국, 된장국 모두 얇은 막이 떠 있었다. 때마다 번갈아 레인지에 돌려먹었으니, 요 며칠 푹한 날씨에 맛이 간 것이 분명하다. 분명해도 어쩔꺼나? 버리기엔 아깝고 한 술 떠보니 아직 시큼하지는 않아 두 솥을 다 팔팔 끓여 불구경시켰는데. 아무래도 확인차 뜬 그 한 술 탓인 듯하다. 곡기 거를 만큼 심각하지도 않았지만, 딱히 생각이 없어 점심은 건너뛰었다. 저녁에 된장국을 덜어 레인지에 돌리는 동안, 식은 두 국 모두 용기에 담아 냉장고 넣어뒀다. 서재 컴 앞에 앉으면 기본적으로.. 2023. 1. 14.
많이 울다. "밥하러 가자 오후 다섯 시 반입니다" 폰에서 알람이 울리고 삼십 분쯤 후에 받은 전화. 그렇게 나가 한잔하고 왔습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일행과 똑같이 주문했을 덴데, '첫 끼를 떠나, 한 끼는 밥을 먹어야지'라는 생각에 된장 공깃밥을 시켰습니다. 다름없이 소주 맥주를 말아 먹었고, 변함없이 에스프레소-그러고 보니, 왜 여긴 원샷이지?-로 마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다가, "1.5ℓ 오란 C를 파는 유일한 곳" 매장에 들러 떨어진 삼월이 까까와 오란 C 두 병과 씨가 잎 함량이 36%인 비싼 담배-오래전부터, 일상의 감각이 밍밍해지면 목구멍에 '터억'걸리는 시가를 두어 모금 빨고는 했습니다. 예전엔 편의점이나 노상 가판에서 쿠바산 시가를 팔았는데요, 어디서도 구경 못 한 게 오랩니다. 서울 오르락거리는.. 2023. 1. 13.
구저분한 쑥맥. 종일 배가 안 고팠고요. 그러다가 갑자기 고팠고요. 그때가 밤 11시쯤이었고요. 그래서 고추장에 썩썩 비벼 첫 끼이자 마지막 끼를 맛나게 먹었고요. 그리고 언제인지 모르게 잠들었고요. 잠들었다 깨니 네 시 반이었고요. '지금이 밤여? 낮여?' 갸웃했고요. 문을 열어보니 밤이었고요. 그래서 그 자리서 그대로 또 잤고요. 그제 일이었고요. 식전에 일어났고요. 어제 밥 안 준 어항에 사료부터 챙겨 줬고요. 아침부터 밥 챙겨 앉았고요. 우물거리며 달력을 보니 장날이었고요. 사용기한 5년쯤 지난 온누리 상품권 챙겨 나갔고요. 김 한 톳하고 맥반석 누른 오징어포 샀고요. 야채 박스에 반 토막 조금 안 되게 남겨 놓은 무가 생각났고요. 조만간 썩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요. 물릴랑 말랑, 몇 끼 남은 배추된장국 생각.. 2023. 1. 10.
망월폐견(望月吠犬) 홍두깨 같은 새벽 술. 새벽 무렵이나 오밤중에 출출하거나 꿀꿀하면 쓰레빠를 끌고 슬렁슬렁 찾아 앉았다 오던, 집 근처에 포장마차-똥집 볶음. 주꾸미, 오징어 데침. 닭발... 먹고 싶다. 안주 같던 포장마차 형수 넋두리도 그립고...-촌이 쇠락한 구도심의 모습처럼 사라진 지 오래이니, 홍두깨 같은 일이다. 일곱 시 무렵 자리에 누워 여느 날처럼 열 시 반에 눈을 뜨고도 남들 하는 반 공일 흉내 내느라 열두 시까지 난방 텐트 밖으로 나서지 않고 둥글 거렸다. 둥글 거리다가 커피 먹을 겸 서재에 두고 나온 담배 찾으러 가다 거실 거울 앞에 멈춰 섰다. '빡빡으로 밀어버릴까?' 얼굴이 호빵처럼 부었다. 부엌 벽면. 늘 절 달력이 걸렸지만, 올해는 없는 곳. 지극정성으로 빌던 어머님의 한 생을 생각했다. 대가족.. 2023. 1. 8.
개봉수, 일 저지르다. "유통기한이 오늘까지니 잡숴유!" 죽었나? 살았나? 독거노인 생사가 궁금했는지, 삼월이 언니께서 출근 전 사랑채에 들러 슬그머니 놓고 가셨습니다. 운동장 땅바닥에 떨어진 소다 맛 아이스께끼 주워 혓바닥으로 핥아내고 먹던 촌놈에게, 뜯지도 않은 먹거리가 유통기한이 뭔 상관이것습니까? 정 상했으면 설사 한 번 하면 끝날 일입죠. 그제 먹은 한 끼는 이랬는데요! 분명 작년 여름에 삼월이 언니께서 "미숫가루랑 똑같은 거"라면서 놓고 가셨는데, 정 급할 때 먹으려고 아껴두었던 건데, 맛이 희한해서 살펴보니 이랬고요. 별 탈 없었습니다. 이렇게 삼용이 블루스 추다가, 삼용이 댄스부르스~~~!!!!!! 봉수 놈. 담배도 담배지만, 커피도 엄청나게 먹어 싼다. 식모커피가 두 봉 남았고, 식모가 회장님 기사에게 타 주는.. 2023. 1. 6.
짜다. 12시 20분, 편의점 마감 10분 전. 서둘러 담배 사러 건너가 함께 들고 온 소주는 냉장고 빈자리 채워 놓고, 급 구미 당긴 새우깡을 아작거리는데, 짜다!. 그렇지 않아도 소금 소태 짐장 김치 먹느라고 오장이 다 절여질 지경인데 이놈도 몹시 짜다. 늙어 가장 먼저 퇴화하는 감각이 미각이라는데, 그래서 자연스럽게 짠 감각에 무뎌진다는데 그렇지도 않은가보다. 미각세포를 떠올리니 예전 썼던 시가 따라온다. ★~詩와 音樂~★ [시집 『바람 그리기』] 쇼윈도 앞에서 / 성봉수 쇼윈도 앞에서 / 성봉수 오일장 이른 흥정을 마친 노파가 빈 함지박을 깔고 앉아 바꾼 돈을 헤아린다 입가에 조글조글한 주름이 닭똥구녕 같다 웃음이 터질 것 같아 당황스러워라 부끄러워 몸을 sbs150127.tistory.com 오후, 한.. 2023. 1. 3.
처량한 밤. 새해 첫날이니 뭔가를 하긴 해야겠는데. 그렇다고 일부러 만들어 할 만큼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첫날에 어울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언제인지 모르게 문턱을 못 넘어서고 제자리서 틱틱거리는 서재 시계 떼고. 아버님 돌아가신 후, 부지간에 슬그머니 사망하신 부엌 시계도 떼고. 분해해서 한쪽으로 밀어두고 교체할 새 무브먼트 싸구려로 쿠팡에 주문 넣었고. 새 달력 하단의 광고 부분 모두 잘라낸 후 부엌, 거실, 안방에 걸어뒀고. 직접 만드신 탁상 달력 파일도 선물 받았고. 새해 첫날이 이렇게 갔고. 지금은 졸리고. 이제 이 닦고 자면 될 일인데, 오늘따라 이 음악이 왜 이리도 처량한지... 202301012906일 Boots Randolph-Last Date 2023.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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